2014년 9월 8일 월요일
신명기 1:19-33
“그림의 떡”
모세는 설교를 시작하면서 옛일을 기억해냈다. 40년 전 이스라엘의 불순종의 실패를 끄집어낸 것이다. 너희 조상들의 잘못을 보고 他山之石(타산지석)으로 삼으라는 것이다. 생각하기도 싫은 그러나 잊지 말아야할 불순종의 역사였다. 반복하지 않아야할 실패를 먼저 언급하는 것이다. 그들의 실패는 하나님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손자가 태어나고 키우면서 愛之重之(애지중지)란 말이 무슨 뜻인지를 배운다. 금이야 옥이야 온통 아이에게 온 가족이 매달리다시피 하고 있다. 아직 목을 못 가누는 아이를 안을 때면 조심스럽게 머리를 손으로 지탱하면서 안는다.
오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할 때에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하나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이 걸어온 길인 줄 알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먼저 그 길을 앞서 가셨다. 장막 칠 곳을 찾으셨다.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갈 길을 지시하셨다. 그럼에도 철딱서니 없는 자들은 자신들에게 이미 주신 가나안 땅을 목전에 두고 불신앙의 길을 걸어간 것이다.
그들이 말하였다. ‘우리가 사람을 우리보다 먼저 보내어 우리를 위하여 그 땅을 정탐하고 어느 길로 올라가야 할 것과 어느 성읍으로 들어가야 할 것을 우리에게 알리게 하자“고 했다. 단 한 절에 ’우리‘라는 단어가 4번이나 반복되고 있었다. 이 전쟁은 하나님께서 가나안을 심판하시기 위한 전쟁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전쟁으로 격하시키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위하여가 아니었다. ’우리‘가 주어가 된 불신앙이었다.
이러한 불신앙의 결과는 하나님을 비방하는 자리로 나아가게 된다.
그들은 열 두 정탐꾼의 보고를 들었다.
“그 땅의 열매를 손에 가지고 우리에게로 돌아와서 우리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땅이 좋더라 하였느니라. 그러나 너희가 올라가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여 장막 중에서 원망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미워하시므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 넘겨 멸하시려고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느니라.“ 신명기 1:25-27
여기서도 우리라는 단어가 6번이나 등장한다. 그들의 실패는 자신들을 바라보면서 시작된다. 여기서 하나님을 잊어버린 인생의 실패를 보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기 보다는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더 신봉하였다. 그들은 열두 정탐꾼을 보내기에 앞서 우리들이 무엇을 해야 할까요?를 여쭈어보아야만 했다. 그러나 그들은 현실을 보았다. 가나안 땅의 막강한 성벽을 보았고 그들의 키를 보았다. 성곽이 하늘에 닿았다고 했다. 그리고 현실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자신들을 보니 오합지졸이었다.
여기에 등장하는 ‘우리의 하나님’이라는 고백은 이미 죽은 하나님이시다. 당시 절대 강국이었던 애굽을 탈출할 때, 홍해를 가르셨던 하나님을 잊어버린 것이다.
그림의 떡이라고 했다. 좋은 땅이요 말씀하신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 것은 맞는데 그곳을 정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하나님을 원망하는 자리로 나아간 것이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려움을 만날 때가 있다. 그때가 바로 주님을 만날 때이다. 엎드릴 때이다. 주님의 품안을 기억하는 것이다.
40년 전, 이 자리에서 이스라엘의 실패를 다시 바라보는 것은 과거의 거울을 통해서 오늘을 살아가는 잣대로 삼기 위함이다. 이것이 지혜요 믿음이다. 과거를 기억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디딤돌로 삼아 모레를 사는 것, 他山之石임을 배우는 아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