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 4일 목요일
누가복음 24:50-53
“기다림”
지난 4개월 동안 누가와 동행한 새벽은 행복 그 자체였다. 이방인이었던 데오빌로 한 사람을 향한 이방인 누가의 뜨거운 열심을 읽었다. 그리고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또한 이방인이었던 나에게 삶의 분명한 좌표를 제시하였다. 또한 소망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셨다.
주님께서 이 땅을 떠나시며 유언과도 같은 말씀을 남기셨다.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복음이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을 말씀하셨다. 이 모든 족속을 향한 사랑이 이천년의 시간이 지나 동방의 조선 땅에 복음의 씨가 뿌려진 것이다. 오늘 내가 성도가 될 수 있었던 하나님의 사랑이었다.
누가는 새로운 시대를 열면서 두 사람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세례 요한과 예수였다. 두 분에게는 공통적으로 비슷한 점이 있다. 두 사람 동일하게 태어나기 전에 하나님께서 이름을 지어 주셨다. 그리고 태어날 것을 가브리엘 천사장을 통해 예고하였다. 두 분 모두 처형을 받아 죽었다. 각각 참수형과 십자가형을 받았다. 즉 동일하게 죽기 위해 이 땅에 태어나셨다는 점이다.
새 시대를 열면서 죽음을 이야기 한다는 것이 모순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원하신다. 인생에 있어서 최대의 난제인 죽음을 어떻게 이겨낼 지를 보여주신 것이다.
지난 삼 년 동안 주님께서 만나신 수많은 사람들을 분석해보면 대부분이 하층계급이었다. 먹을 것이 없어서 광야에서 주릴 수밖에 없던 자들이었다. 불의한 정권에 의해 착취당하고 고통당했던 자들이었다. 병든 자들이었다. 어린아이들까지도 거절하지 않으셨다. 심지어 모든 사람들과 격리되어 살아가야만 했던 나병환자들까지 품으셨다.
돌아본다. 주님은 어떤 분이신가? 누가복음을 마치면서 그려보았다.
주님의 손은 못 박히기 이전에 목수로서 살았던 굳은살이 박인 노동자의 손이었다. 노를 저었던 베드로의 손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우리가 주님을 다시 만나는 날, 주님과 악수를 나눌 때, 못 박혔던 그리고 못박인 손을 만질 수 있을 것이다.
제자들 면면을 살펴보아도 자랑할 만한 스펙이 전혀 없는 자들이었다. 오합지졸 같은 인생들을 향하여 오늘 손을 높이 들어 축복하신다. 너희들의 복은 땅 끝에 있다고 말씀하신다. 그 땅 끝이 보이느냐고 물으신다. 그곳에서 세상 끝 날까지 항상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신다. 오늘 우리가 주님을 만나기를 원한다면 복음의 최전방 땅 끝으로 가야만 한다.
조금 전까지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허망함에 어쩔 줄 모르던 자들이었다. 손과 발을 보고도 믿기지 않던 제자들이었다. 그들을 데리고 베다니로 향하셨다. 일전에 죽은 나사로를 살린 곳이었다. 예루살렘에 오면 늘 머무시던 제2의 고향 같은 곳이었다. 제자들과 추억이 깃든 장소에서 주님께서 그들을 축복하시며 하늘로 올라가셨다. 그들은 그때서야 나사로를 바라보며 부활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다시 사는 부활이 무엇인지를 깨닫는다. 그들은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갔다. 기다림이 시작된 것이다.
추신:지난 4개월 동안 누가와 함께 동행 해주신 모든 분들과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내일부터는 신명기 묵상이 진행됩니다. 주님께서 공생애를 앞두시고 40일 굶주리셨을 때, 사탄의 공격을 말씀으로 대적하셨습니다. 그때, 인용된 성경이 신명기입니다. 기대하는 마음으로 신명기 여행을 떠나고자 합니다.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