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 2일 화요일
누가복음 24:13-35
“그 날에”
그날이었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날이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아직은 슬픔의 날이었다. 예루살렘에서 이십 오리 쯤 떨어진 엠마오로 예수님의 두 제자가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들의 대화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중심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서로 묻고 있었다. 그때 예수님께서 대화중에 슬며시 끼어드셨다. 바로 자신들이 말하고 있는 예수님이 자신들과 동행하심에도 그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들의 얼굴엔 슬픈 빛을 띠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향해서 뜬금없이 무슨 일이냐며 넌지시 질문을 던진다.
제자 중 하나인 글로바가 책망 비슷한 말로 꾸짖듯이 말했다. ‘당신이 예루살렘에 체류하면서도 요즘 거기서 된 일을 혼자만 알지 못하느냐!’
‘무슨 일이냐?’는 주님을 되물음에 장황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말이 끝나자 주님께서 책망하시면서 성경을 풀어 주신다. 미련한 자들이라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라고 하셨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그들은 알지 못했다. 주님이 자신들과 함께 있었지만 알지 못했다. 대화 속에서 무언지 모를 끌림이 있었다. 떠나시고자하는 주님을 붙들었다. 함께 식사를 하게 된다. 주님께서 떡을 가지시고 축사하셨다. 그들에게 떼어 주시니, 그들의 눈이 밝아졌다. 비로소 예수님이 보인 것이다. 그때 주님께서 홀연히 사라지신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 마음이 뜨거웠다고 고백했다.
곧 일어났다. 그들은 발걸음을 돌이켜 예루살렘으로 다시 향했다.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확인하였다. 시몬이 만났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들이 만난 예수님을 간증하였다.
오늘의 이야기는 대충 이 정도이다. 나는 오늘 이 말씀이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곰곰이 생각해본다. 어제는 기억하는 것이 믿음이라고 했다. 오늘은 ‘믿음은 들음에서 나는 것이다.’고 정의해본다.
다시 말하면 말씀 묵상을 통해서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는 말씀이다. 그들이 근심하였을 때, 예수님이 보이지 않았다. 슬픔에 잠겨 있을 때, 함께 계신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다. 오늘도 나와 함께 하고 계신 임마누엘 성령님께서 느껴지지 않는다면 말씀을 보아야만 한다. 말씀을 묵상할 때, 마음이 뜨거워진다면 바로 주님을 뵙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빌립이 이디오피아 내시에게도 동일하게 복음을 전하였다. 그가 이사야서를 읽을 때, 무슨 뜻인지를 알지 못했다. 그때 빌립이 이사야의 말이 예수님에 관한 말씀인 것을 풀어 전할 때, 그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말씀중심이란 말의 의미가 바로 이런 것이다. 말씀을 사모한다는 것이 바로 주님을 만나는 길이다. 말씀을 듣는 다는 것이 믿음을 새롭게 하는 길이다. 혹시 함께 하고 계신 성령님이 멀게 느껴지고 있다면 내 삶의 말씀 생활을 한번쯤 점검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들이 슬픔에 빠져 있을 때 주님이 보이지 않았다. 그들에게 말씀을 풀어 주실 때, 그들의 마음이 뜨거워졌다고 했다. 그 때 주님이 보이기 시작한 것처럼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의 삶의 기준은 말씀을 가까이 하는 거룩한 습관이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