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279;마18:32~33 …악한 종아…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오늘 말씀을 보고 나의 삶을 더듬어서 용서해야 할 사람을 한 번 적어보았습니다. 몇 명 있습니다. 마음에 묻고, 덮고, 잊고 지냈는데, 아직 나의 마음에 완전히 용서되지 않은 자들이 있습니다. 거꾸로 내가 용서를 구해야 할 사람들도 적어보았습니다. 적지 않은 나의 돈을 사기친 자를 제외하고는, 신기하게도 앞에 적었던 내가 용서해야 할 사람들과 일치합니다. 관계 가운데 상처를 주고 받으며 생긴 문제이기 때문에, 용서가 일방적일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 마태복음을 묵상하다 보니 계속해서 ‘불쌍히 여김’에 대해 생각하게 하십니다. 나에게 불쌍히 여기는 마음과 애통한 마음이 부족해서 주시는 말씀 같습니다. 악하고 음란했던 나를 불쌍히 여기셔서 만 달란트보다 더한 죄의 빚을 탕감 받는 은혜를 입었음에도, 겨우 백 데나리온 빚 진 자들을 불쌍히 여기지 못하고 목을 잡고 빚을 갚으라고 했던 악한 종이 나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 하라고 하신 용서… 이 용서가 ‘불쌍히 여김’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무리들을 불쌍히 여기셨던 일들을, 또 왕이 엄청난 빚을 진 종을 불쌍히 여겼던 사건을 나의 눈에 크게 보여주시는 것 같습니다. 불쌍히 여김 받은 자로서, 은혜를 모르고 다른 사람의 목을 잡는 악한 종이 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