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 28일 목요일
누가복음 23:33-43
“십자가 1”
지난 삼 년 동안 주님께서 숨 가쁘게 달려오셨다.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시작된 공생애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길이 십자가였다.
아무리 잘못을 저지른 사람도 죽을 때는 긍휼히 여기게 마련이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끝까지 조롱과 멸시를 받으셨다. 십자가 자체만으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이셨는데 거기에 네가 그리스도라면 너를 구원하라며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명하라고 다그치는 자들이 있었다. 주님께서는 능히 그러실 수 있는 능력이 있으셨다. 지금이라도 말씀 한 마디면 자신이 하나님 아들이심을 만 천하에 알리실 수 있으셨다. 그러나 참으셨다. 오히려 그들의 잘못을 끝까지 두둔하신다. 저들이 몰라서 그렇다며 저들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탄원하신다. 주님의 사역은 숨 너머 갈 때까지 멈추시지 않으셨다. 자신을 못 박는 자들까지도 품으셨다. 끝까지 포기 하지 않으시고 기도하셨다. 나를 위해 아낌없이 피 흘리셨다.
그 십자가는 두 갈래 길이다. 인생의 끝이라고 알고 있는 죽음 앞에서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로 나누어진다. 그 사실을 오늘 두 강도를 통해 극명하게 보여주신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다. 빛이 있으라 하셨더니 빛이 생겨났다. 공허한 우주가 질서로 채워졌다. 그 아름다운 질서와 세상이 인간의 범죄로 인하여 파괴되었다. 한 사람의 죄의 파장이 나비효과가 되어 온 우주가 비틀려버렸다. 그러나 또 다른 한 사람이 오늘 망가진 세상을 바로 잡기 위해, 그 마침표를 찍으시기 위해 자신의 몸을 버리시기로 결정하신 것이다.
범죄 한 인간이 부끄러움과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 무화과나무 옷을 만들어 입었다. 그때 하나님께서 짐승을 잡아 가죽옷을 지어 입히신다. 그때 이미 하나님 자신을 버리시기로 결심하셨다. 말씀 한 마디면 온 우주가 순종하는 능력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새롭게 만드시기 위해 자신을 버려 구원의 길을 여시기로 작정하셨다.
그 길이 십자가의 길이었다. 많은 사람이 의아해 했다. 어떻게 그런 결정을 할 수 있을까? 좁은 길이었다. 찾는 이가 적은 길이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어!’라며 조롱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함께 죽어가고 있는 왼편 강도까지도 비웃고 있다.
딸내미가 아기를 낳았다. 사람들이 손주바보라는 말을 흔히 말할 때, 무슨 소리인지 잘 알지 못했다. 아이의 얼굴에 내가 있었다. 언뜻 아버지의 얼굴도 보인다. 아이가 어쩌다 웃기라도 하면 호들갑을 떨며 온 가족이 웃음꽃이 핀다. 나의 핏줄이기 때문이다. 생명의 탄생과 성장과정을 보면서 경이로움과 새로운 세계를 만난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였다. 나는 이 말씀이 무슨 말인지를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다. 자신의 분신을 만드셨다. 손자의 얼굴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발견한 것이다. 그러기에 포기하실 수 없으셨다. 자신을 버리기로 결정하셨다. 십자가였다.
가쁜 숨을 몰아 쉬셨다. 마지막까지 자신을 향해 구원을 요청하는 오른편 강도를 챙기셨다. 바로 그 한 사람을 위해 이 땅에 오셨기 때문이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누가복음 23:4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