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 27일 수요일
누가복음 23:26-32
“십자가 그리고 세 사람”
자신을 고발하는 자들에게 한 마디 항의도 하지 않으셨다.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순간까지도 주님의 시선은 끝까지 우리들을 향하셨다.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를 향하여 고개를 돌리셨다. 그들을 염려하시며 심판을 이야기 하셨다. 그날의 엄중함을 말씀하셨다.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고 하셨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약한 자들을 위로하셨다. 병든 자를 치료하셨다.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셨다. 그 이유 때문에 지금 십자가를 지신 것이다. 불의한 자들에 의해 정의가 심판을 받는 不公正하고 不公平하고 萬不當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에서 등장하는 세 사람이 있다. 그 중 한 사람이 시몬이라는 이름을 가진 구레네 사람이었다. 제자가 아니었다. 시골 사람이었다. 그를 붙들어 예수님의 십자가를 강제로 지게 하였다. 억지로 진 십자가였지만 가장 성공한 인생이었다. 예수님의 구속사역에 동참한 자였다.
십자가형은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한 형벌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본보기로 보여주기 위한 사형제도였다. 로마사람에게는 집행을 면해줄 만큼 고통과 수치 속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처형 방법이다.
말씀대로였다. 주님은 유대인의 왕이시지만 행악자들과 함께 처형을 당하신다.
이사야는 53장 12절에서 “그러므로 내가 그에게 존귀한 자와 함께 몫을 받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라 그러나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골고다 언덕에 세워진 세 개의 십자가라는 한 장의 그림을 통해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말씀하신다.
골고다는 알곡과 가라지가 나누어지는 곳이다. 양과 염소가 구별되어지는 장소이다. 구원과 멸망이 선포되는 자리이다. 모든 인생들이 산 자와 죽은 자로 나누어지는 심판의 장소이다.
십자가를 지고 걸어가면서까지 가슴을 치며 통곡하는 여인들을 돌아보셨다. 그들을 염려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았다. 그때 오른편 강도의 눈이 열렸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의 모습이 보인 것이다.
십자가의 길에서 예수를 만난 사람들은 이처럼 두 종류의 사람들로 나누어진다.
우리들이 바로 행악자들이었다. 왼편 강도처럼 영원한 형벌을 받아야할 자들이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로마서 3:23 말씀대로 어느 누구하나 예외가 없었다. 지금까지 존재했던 모든 인류가 죄인이었다.
우리들이 오른편 강도였다. 아무런 공로가 없지만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기대어 낙원에 가게 된 자들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은혜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나의 구원은 나의 공로가 아니다. 죄인 됨을 고백하고 주님께 나아기만 하면 주어지는 선물이다. 이것이 은혜이다. 내가 오른편 강도라는 사실이 바로 은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