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단을 쌓은 것이
토요일에 다친 허리 부분이 움직이면 많이 아픕니다.
금방 나을 줄 알았는데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습니다.
몸이 아프니까 고통당하시고 죽음에 이른 형수님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고 질병으로 아프신 분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김태훈님을 통하여 밴드로 위로하시는 성령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찌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마가복음16:17∽18)
내가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고 있으니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독을 마실찌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음을 입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이런 일을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으며 말씀에 의지하여 주님이 내게 준 이러한 일들을 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단을 쌓은 것이 돌이켜 여호와를 좇지 아니하려 함이거나 혹시 그 위에 번제나 소제를 드리려 함이거나 혹시 화목제물을 드리려 함이어든 여호와는 친히 벌하시옵소서.
우리가 목적이 있어서 주의하고 이같이 하였노라 곧 생각하기를 후일에 너희 자손이 우리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희 르우벤 자손 갓 자손아 여호와께서 우리와 너희 사이에 요단으로 경계를 삼으셨나니 너희는 여호와께 분의가 없느니라 하여 너희 자손이 우리 자손으로 여호와 경외하기를 그치게 할까 하여 우리가 말하기를 우리가 이제 한 단 쌓기를 예비하자 하였노니 이는 번제를 위함도 아니요 다른 제사를 위함도 아니라 우리가 여호와 앞에서 우리 번제와 우리 다른 제사와 우리 화목제로 섬기는 것을 우리와 너희 사이와 우리의 후대 사이에 증거가 되게 할뿐으로서 너희 자손으로 후일에 우리 자손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여호와께 분의가 없다 못하게 하려 함이로라.
우리가 말하였거니와 만일 그들이 후일에 우리에게나 우리 후대에게 이 같이 말하면 우리가 말하기를 우리 열조가 지은 여호와의 단 모형을 보라 이는 번제를 위한 것도 아니요 다른 제사를 위한 것도 아니라 오직 우리와 너희 사이에 증거만 되게 할뿐이라.
우리가 번제나 소제나 다른 제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성막 앞에 있는 단 외에 단을 쌓음으로 여호와께 패역하고 오늘날 여호와를 좇음에서 떠나려 함은 결단코 아니니라 하리라.
제사장 비느하스와 그와 함께한 회중의 방백 곧 이스라엘 천만인의 두령들이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자손의 말을 듣고 좋게 여긴지라.>(여호수아22:23∽30)
단을 쌓은 것에 대하여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가 이스라엘 천만인의 두령에게 대답하였습니다.
우리가 단을 쌓은 것이 돌이켜 여호와를 좇지 아니하려 함이거나 혹시 그 위에 번제나 소제를 드리려 함이거나 혹시 화목제물을 드리려 함이어든 여호와는 친히 벌하시지만 그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말하였거니와 만일 그들이 후일에 우리에게나 우리 후대에게 이 같이 말하면 우리가 말하기를 우리 열조가 지은 여호와의 단 모형을 보라 이는 번제를 위한 것도 아니요 다른 제사를 위한 것도 아니라 오직 우리와 너희 사이에 증거만 되게 할뿐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번제나 소제나 다른 제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성막 앞에 있는 단 외에 단을 쌓음으로 여호와께 패역하고 오늘날 여호와를 좇음에서 떠나려 함은 결단코 아니니라 하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을 제사장 비느하스와 지도자들이 좋게 여겼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예배의 모양과 순서를 달리 하는 것을 보면 이러한 생각이 들 때도 간혹 있습니다.
왜 우리와 같은 식으로 예배를 드리지 않을까? 라는 의혹을 갖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배의 모양이 다를지라도 그 중심에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를 드린다면 그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이단들이 섬기는 개인 우상이나 잘못된 것을 다라서는 안 됩니다.
인간의 욕망이나 의식이 배제된 하나님 중심으로 예배를 신령과 진정으로 드린다면 하나님이 기쁘게 받아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