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십일조
작성자명 [박종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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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8.04.07
2008-04-07(월) 출애굽기 8:1-15 ‘감정의 십일조’
어느 지방에서 많이 쓰이는 말 중에, 꼬라지가 난다는 말이 있는데
한 번 꼬라지가 나니 잘 풀어지질 않습니다.
거울 앞에서 한참을 서서 옷매무새를 고치고 나간
딸에 대한 불편한 마음을 아내 앞에서 쏟아 부었습니다,
나쁜 X, 옷은 뱀 허물 벗듯 벗어놓고, 그렇게 얘기했건만
스탠드 불도, 모니터도 안 끄고 제 얼굴만 단장하고 나가다니...
‘사형집행은 신중해야 한다는 명제는 언제나 진리다. 그러나...
이 명제가 반드시 진리라고도 하기 어렵게 됐다. 대통령의 혜안을 기대한다.’
꼬인 마음으로 기사를 읽으니 온통 흉만 보입니다.
사람을 살리고 죽이고 하는 문제를 어떻게 대통령의 혜안에 맡기려 하나
당연히 하나님의 지혜를 구해야지, 기독교 신문의 사회부장이라는 사람이...
어제, 목장의 지체가 먼 길을 찾아와 위로해주고
최고의 찬사로 문자까지 날려주며 기분을 풀어주었는데
하룻밤 자고나니 다시 꼬여 버렸습니다.
‘자고나면 위대해지고 자고나면 초라해지는...’
킬리만자로의 표범 이라는 노래 가사의 한 구절처럼
세상에서 위대한 자 바로가 여호와의 권능 앞에 잠시 초라해져
모세와 아론을 부르고 여호와의 존재를 최초로 인정하지만
숨통이 트이니 다시 강퍅한 사람으로 변하는 모습이
냉탕과 온탕의 감정으로 아내와 딸의 흉을 잡고
신문 기사 한 줄도 그냥 바주지 못하는 내 모습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 큰 도시의 복판에 이렇듯 철저히 혼자 버련진들 무슨 상관이랴
나보다 더 불행하게 살다 간 고호란 사나이도 있었는데’
이 시대 최고 인기 작사가가 지은 노래 가사에서 위안을 찾아봅니다.
나보다 더 강퍅하게 살다 간 바로도 있었는데...
바로를 길들이는 재앙을 원샷으로 끝내지 않으심은
내 백성을 괴롭게 하는 자에게 똑 같이 갚아 주시겠다는
창세기 약속의 이행을 보여주시려는
하나님의 의지의 표현이 아닌가 생각됨에
내 아내, 내 자식도 내 것이 아니라는
청지기의 마음을 회복하여
그들을 내 감정의 우리에서 놓아주고
내 감정의 십분지 일이라도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
내 가족을 기복적인 믿음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오직 사랑의 대상으로만 보는 감정의 십일조를
오늘 하루만이라도 실천하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