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 25일 월요일
누가복음 23:1-12
“빌라도 앞에 서시다”
베드로의 거듭된 부인을 들으면서 몸을 돌이켜 그를 보았다.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신 주님은 이제 사랑하는 제자들로부터도 철저하게 외면 당하셨다. 어느 누구도 함께 갈수 없는 길이었다. 홀로 걸어가셨다. 오늘 제사장들에 의해 점령군 로마총독 빌라도 앞에 서신다.
흔히들 사람에게는 성공의 기회가 세 번 있다고 한다. 오늘 본문은 두 번의 만남과 세 번의 기회를 흘려보낸 한 사람의 실패를 이야기하고 있다. 예루살렘에서 총독이었던 빌라도였다. 유월절이라는 유대인들의 최대 절기를 보내면서 혹시나 있을지 모를 민란과 소요에 대한 대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 돌연히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고 하는 예수가 자기 앞에 나타난 것이다. 수많은 유대인들이 그를 고소하였지만 그는 제 삼자의 눈을 가지고 예수님을 보았다. 그들이 말하고 있는 반역죄가 성립되지 않음을 누구보다 먼저 알고 있었다. 그 역시 예수란 사람을 주목하고 있었지만 그가 한 일이라고는 가난한 자들과 함께 한 것 외에는 별다른 잘못을 발견하지 못했다. 자기 앞에서 자칭 왕이라고 말하고 있는 힘없는 한 인간에게서 사형을 시킬만한 조건을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내가 보니 이 사람에게는 죄가 없도다.”
그의 판결에도 고소인들은 더욱 강경하게 외쳤다. 그의 죄목이 ‘가르쳤다는 것’이다. 이 말도 안 되는 요청에 고도의 정치적인 결정을 한다. 마침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을 방문 중인 갈릴리 분봉왕 헤롯에게 보낸 것이다.
헤롯 역시 예수의 존재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그가 하는 일을 이미 사찰을 통해서 면밀하게 주시하고 있었다. 정치적으로 위협이 되었다면 그가 먼저 예수를 잡아드렸을 것이다. 그가 소위 이적을 행한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궁금하던 차였다. 그 예수가 자기 앞에 등장한 것이다. 기뻐하였다고 했다. 그가 여러 말로 물었으나 주님께서는 묵비권을 행사하셨다. 헤롯은 자신 앞에서 이적을 통해 예수님 자신을 지키기를 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이 땅에 오셔서 자신을 위해서는 한 번도 능력을 행사하시지 않으셨다. 외롭고 가난하고 병든 자들에게 한없이 따뜻하셨던 주님께서 자기 자신에게는 이처럼 엄격하셨다.
빌라도와 헤롯은 정치적으로 정적관계에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민란과 소요라는 문제 앞에서는 친구가 되었다.
수가성에 남편 다섯이 있었지만 지금 살고 있는 남자도 남편이 아니었던 기구한 한 여인도 예수를 알아보았다. 뽕나무에서 예수의 얼굴을 보려고 기다리고 있었던 삭개오를 부르셨을 때, 예수를 알아보았다.
빌라도와 헤롯은 최고의 청치지도자들이었다.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최고의 종교지도자들이었다. 그러나 자신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바로 자기 앞에 서있지만 알아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기득권을 포기할 수 없었던 대제사장과 추종하는 무리들이었다. 내려놓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나라였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내려놓아야만 보이는 나라이다.
소신과 현실 속에서 저울질하던 빌라도는 결국 종교적 문제를 정치적인 결정을 한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정의를 외면할 수밖에 없는 이 땅의 수많은 인생들을 향해서 빌라도는 오늘 외치고 있다. 나를 따라오지 말라고. 빌라도의 길을 걷는 자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날리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