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내려온 예수님과 세 제자가 무리앞에 이르매 한 사람이 나와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간질로 물과 불에 넘어지는지라'주님앞에 엎드려 자신의 아들을 고쳐달라고 한다.
아들은 부모가 속으로 낳은 자신의 분신 같고, 내 혈육같은 존재이다. 내 속에도 자꾸 말씀을 기억하지 못하고 하나님 세상에 눈 감아버리는 내가 낳은 간질걸린 아들과 같은 내가 있다. 계속 발작을 일으키며 말씀에 대한 생각을 접어버리고 불과 물처럼 주어지는 환경에 넘어지며 고생하는 나의 죄와 내 영혼이 있다.
이 사람은 제자들이 고쳐주려고했음에도 그들이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라고 이야기 한다.
능히라는 말은 능력이 있어서 쉽게라는 뜻이다. 아마 그 사람은 제자들을 능력이 없다라고 생각하고 제자의 능력을 의심했을 것이다. 기적을 많이 베푸신 예수님에 대한 소문은 익히 들었지만 예수님이 아닌 제자들이 했기 때문에 '이거 제자들이 한다고 뭐가 되겠어?'라며 의심했을 것 같다.
나도 사소한 작은 것이지만 설마... 이런건 좀 그렇겠지?라며 매번의심하며, 믿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예수님은 이런 그 사람의 마음을 알아보시고,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라고 말씀하시며 아들을 데려오라시고 고쳐주신다.
믿음이 없는 그들에게는 이 상황에 대한 어떠한 설명도 하지 않으시고 '믿음이 없는 세대여'라고 말씀하시며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참으리오 라고 하신다. 언젠가는 떠나시고 언젠가는 참지 않으신다는 말씀이다. 그래도 그들을 고쳐주신다. 예수님은 이제 십자가에 못박히고 부활하신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죽고 나면 또 다시 예수님의 재림을 경험하게 되는데, 그 때에는 믿음으로 우리는 구원 받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영생을 예수님과 함께하는 것인데, 믿음이 없는 자들은 그 때에 구원받지 못하며 예수님께서 함께 있지 아니하시고, 참지도 아니하신다고 하신다.
무시당하고 풀이 죽었을 제자들이 예수님께 묻는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믿음이 작아서라고 하신다. 겨자씨 한 알만큼의 믿음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하신다.
그 무리에게 말씀하신 것과는 다르게 제자들에게는 믿음이 작다고 하신다. 없다고는 하지 않으신다. 그리고 이 상황에 대한 설명도 해주시는 것이다. 우리가 아주 작은 믿음이 있더라도 그 믿음으로 산을 옮기는 것처럼, 바람나간 아빠가 고마워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나의 훈련이다 라는 생각이 들고 25년간의 내 가치관의 변화 처럼 산이 옮겨지는 것처럼 내 삶에 기적같은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갈릴리에 모이실 때에 또 다시 한번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말씀하신다. 두 번째로 말씀하신다. 두 번째인데도 제자들은 매우 근심한다.
세금받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왜 예수님은 세금을 내지 않느냐한다.
예수님께 직접 따지지 못하고 베드로에게 이야기 한다. 그들도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기 때문에 예수님께 대놓고 따지기도 좀 두렵고 예수님이 존귀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집에 들어온 베드로가 이야기를 하기도 전에 먼저 예수님이 아시고 오히려 물으신다. 베드로가 자신의 생각, 말을 꺼내기도 전에 질문하심으로 그의 생각의 방향을 바로잡으신다. 내가 어떤 사건을 겪더라도 예수님 이런일이 이렇게 있어서 이건 좀 그렇지 않아요?라고 내 생각을 많이 얘기했었는데, 이제는 예수님이 내게 먼저 뭐라고 질문하시고 내 생각의 방향을 몰아가시는지 들어야하겠다.
세상 임금들의 이야기를 하시며, 그러나 우리가 그들을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세금을 낸다 하신다.
세금을 내라고 이야기 하는 사람들도 왕의 부하로서 자신들이 해야하는 일을 할 뿐이다. 예수님은 아마 세금을 안내도 그만이셨을 것이다. 그래도 예수님께서는 세상에서의 도리를 지키시며 믿지 않더라도 자신의 일을 하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주지 않기 위해서 세금을 내시는 모범을 보이신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에 맞지 않아보인다고 해서 정해진 세상 법과 규칙을 무시해서는 안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