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 23일 토요일
누가복음 22:63-71
“탐욕의 비늘을 걷어내며”
닭 우는 소리와 함께 몸을 돌리셨다. 부인하는 제자 베드로를 향해 긍휼의 눈빛으로 보셨다. 배반과 부인으로 가장 사랑하는 자들로부터 버려지셨다. 홀로 되셨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제자들을 챙기셨다. 주님의 눈빛에, 주님의 사랑 앞에서 베드로는 통곡하였다.
예수를 지키는 자들이 주님을 희롱하였다. 주님의 눈을 가리고 장님놀이를 하며 때리고 있었다. 많은 말로 욕하였다. 바로 자신들 앞에 구세주가 있음에도 그들은 알지 못했다. 보지 못했다.
일반사람들은 그렇다고 치자 종교지도자들이었다. 성경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자들이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었다. 그들 역시 바로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했다. 눈뜬장님이었다.
목말라하며 그토록 기다리던 그 분이 바로 눈앞에 계신데 그들은 알지 못했다. 기득권이라는 포기할 수 없는 탐욕이 그들의 눈을 가렸다. 어둠은 빛을 가장 두려워한다.
그들은 이미 결론을 내리고 심문을 하고 있었다. 더 이상 진위를 알아보려는 자들이 아니었다. 죽이려고 마음먹은 자들이었다. 살인을 계획한 자들이 합법을 가장하기 위해서 심문이라는 절차를 밟고 있는 것이다.
네가 그리스도냐? 이 질문은 그물을 치고 걸려들기를 기다리는 사냥꾼의 올무였다. 주님은 자신을 폭로하신다. 하나님의 아들이냐는 물음에 너희들의 입으로 지금 말하고 있다고 선언하신다.
그들은 기다렸던 대답이 나오자 더 이상 들을 말이 없다고 선언한다. 앞뒤 가릴 것이 없다고 했다.
세상이 시끄럽다.
가을장마라고 했다. 많은 비가 내렸다. 순식간에 강이 탁류로 변하고 수많은 쓰레기들이 강에 가득하다.
세월호 사건으로 시작된 이 나라의 부패와 군문화의 비정상화, 그리고 지검장의 일탈로 인해 온 나라가 패닉에 빠진 듯하다. 곧 드러날 사건 앞에서도 뻔뻔하게 아니라고 거짓을 말하는 자들을 보면서 어쩌면 저럴 수가 있을까? 분노하고 손가락질하던 내 자신이 부끄럽다. 그것이 우리의 속살이고 나의 민낯이기 때문이다. 비에 씻겨 드러난 쓰레기 같은 우리들의 자화상을 보면서 절망한다. 그리고 감사한다. 도덕과 윤리를 넘어선 생명의 나라를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주님 때문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을 부르시는 소망의 나라를 기억하기 때문이다.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오늘 나의 눈에 비늘을 걷어내고 싶다. 배반의 잔을 버리고 부인의 자리에서 일어나 통곡하며 주님께로 나의 마음을 드리기를 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