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은 마태복음 16장 1-12절 말씀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표적을 보이실 것을 요구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시대의 표적을
분별할 수 없음을 지적하시고 그들에게 보여줄 표적은 요나의 표적밖에는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바리새인들의 가르침을 주의하라고 경고하시지만 제자들은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예수님은 그들의 어리석음을 꾸짖으십니다.
바리새인들과 예수님의 제자들은 모두 예수님이 무엇을 말씀하시는지를 이해하지 못했고
무엇 때문에 질책하시는지를 알 수 없었습니다.
제자들은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한 반면 바리새인들은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둘 다 알아듣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 양쪽 모두 예수님이 직접 앞에서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에 대해 가르치셨지만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가 그들에게는 이해하기가 너무 어려웠습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오랜 시간동안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것입니다.
수요예배에서 담임목사님은 최고의 교육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말씀을 읽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저에게 큐티가 중요한 것도 바로 그 이유 때문입니다.
말씀을 읽고 그것에 비춰 내 자신에 대해서 해석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저를 그의 말씀으로 가르치시는 것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바리새인들처럼 저는 가끔 하나님의 눈으로 나 자신을 보는 것을 원하지 않는 때가 있습니다.
제자들처럼 가끔 저는 앞뒤가 꽉 막히거나 하나님께서 보다 더 명확하게 그 뜻을 드러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 익숙하지 않은 비유와의 실랑이를 매일 합니다.
오늘 한 선생님이 저에게 와서 그의 삼촌이 심장질환으로 임종을 앞두고 있다는 말을
해 주었습니다. 한 시간 뒤에 그 선생님은 함께 자란 사촌이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또 다른
소식을 들었습니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터뜨릴 것 같은 그의 표정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를 안아줘야 할 때가 아니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상황을 정확하게 읽도록 인도해주셨다고 믿습니다.
가장 친한 친구가 죽고 나서 석 달 뒤 첫 번째 아내가 사망했을 때의 저의 이야기를 간략하게
그에게 들려주었습니다. 저의 나눔이 그가 안정을 찾는데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그에게 오후 수업은 하지 말고 슬퍼할 것은 슬퍼하고 앞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에 대해서
가서 생각해 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내일은 좀 더 깊은 대화를 그와 나누려고 합니다. 그는 고향인 캐나다를 떠나 멀리 이곳에
아내와도 떨어져 지내고 있습니다. 사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주님! 힘들어하는 이 선생님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당신이 필요로 하는 누룩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