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5:21-28)
어제 외래에서, 한 아이가 ‘선생님 이것 드세요’ 하면서 초코렛을 내밀어서 좋아하고 있을 때, 한 어머니가 ‘씩씩’거리면서 화가 나서 들어오셨습니다.
너무 오래 기다려서 그러셨나 보나 했는데...
그것도 그것이지만, 지난 주에 아이 데리고 왔을 때 제가 설명을 안해주었다고 화가 났습니다. 귀가 어떤지, 어떤 시술을 했는지... 설명을 못들었다고 합니다.
솔직히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챠트를 자세히 보니, 1차 의원을 오래 다니다가, ‘환기관 삽입’을 해야 할 것 같다고 해서 보내온 환자입니다. 그래서 환자의 상태가 어떤지 이미 자세히 알고 왔을 것이라 생각하고 설명이 적었나 봅니다.
‘죄송하다’ 고 했습니다. 전후상황을 이야기하고, 아실 줄 알고 설명이 부족했었나 보다 하고, 자세히 설명드린 뒤 또 ‘죄송하다’고 했습니다. 화가 많이 풀리신 표정입니다. 아이도 지난 주 시술 받자마자 ‘귀가 뻥 뚤린 것 같이 잘 들린다’고 하니 얼굴이 밝아지셨습니다. 나가실 때도 ‘이제 화푸세요!’라고 웃어드리니, 미소로 나가십니다.
옛날 같으면, 그 ‘자존심’으로 형식적인 사과를 했을 것 같은데, 어제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저도 신기했습니다. 한두달 정도 기다렸다가 시술 할 것을 서둘러서 해 준 것에 생색이 날만도 하는데, 그러질 않았습니다. 그냥 미안했습니다.
왜 가나안 여자의 외침에 예수님께서는 매정하게 말씀이 없으셨을까? (나처럼 바쁘셨나?...) 그리고 하신 말씀이 ‘개들에게는 줄수 없다’고 왜 까칠하게 구셨을까?
천국의 비밀을 보이시기 위한 예수님의 의도된 행동이실텐데...
어찌하든, 가나안 여자의 낮은 ‘자존심’, 높은 ‘자존감’이 놀랍습니다.
‘개’라 불리울 때, 인정하는 것이 ‘소원을 이루는(28)’ 길임을 배웁니다.
몇 년전 ‘똥개’로 불리울 때, 아무말 없이 인정했을 때의 그 ‘감격’이 생각납니다.
적용) 잘 못했을 때, ‘죄송합니다’ 라고 진심으로 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