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어느 서당에 혀 짧은 훈장선생님이 계셨습니다.
아이들에게 바람 풍(風)자를 가리키며 혀가 짧은 관계로 "바담 풍"이라 했습니다.
아이들은 들은 대로 "바담 풍"이라 따라 했습니다.
그랬더니 훈장님 다시 "아냐 아냐 바담 풍"하시고 아이들은 따라서 또 다시 "바담 풍"했습니다.
그랬더니 훈장님은 "내가 '바담 풍'해도 너희들은 '바담 풍'해라"고 했다고 합니다.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 마태복음15장27절
예수께서 두로와 시돈 지방에 들르셨을 때 가나안 여인이 예수께 나아와
귀신들린 딸의 병을 고쳐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26절)고
예수께서는 거절하셨습니다.
당시에는 다른 민족은 야만인으로 보는 경향이 많았는데 유대인들은 종교적 우월감에 젖어
다른 민족을 개로 표현하곤 했습니다. 또 개라는 표현은 마귀의 자식들을 의미하기도 했습니다.
여인은 예수님이 자신을 개로 비유하시는 것에 분노하지 않고 "옳소이다!"라고 화답합니다.
나는 이 여인처럼의 상황에 처하면 "옳소이다!"를 쉽게 할 수 있을까요.
물론 예수님 앞이니 가식적인 '옳소이다!'를 했을 수도 있겠지만
실상 내면적으로는 "옳소이다!"가 전혀 안 되는 사람이 바로 나입니다.
아내의 목장보고서를 보면서 아내가 "남편이 무시가 된다."라고 나눈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 무시 받을 만하지. 내 잘못이 많으니까…….'하고 쿨하게 인정하면 되는데
내 잘못까지는 인정이 되지만 무시한다는 말에 비위가 뒤집힙니다.
결국 아내에게 따져 묻는 치졸함을 보이고 말았습니다.
이런 내가 목장에서는 목원 들에게 '그럴 수도 있다 생각하고 인정하라.'
'옳소이다!' 하라고 권면을 합니다.
이러한 모습이 혀 짧은 훈장의 모습이 아닐까요?
자신이 '바담 풍'이라 하면서 따라 하라는 바담풍 목자가 바로 나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찾아온 여인을 개로 보아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신앙의 연단을 위함이었을 꺼라 하십니다.
내게 다가오는 무시가 내 신앙의 연단임을 알고
어느 상황에서든 "옳소이다."할 수 있는 믿음을 간구합니다.
그래서 적용의 본을 보이며 ‘바담풍’하지 않는
‘바람풍’ 목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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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전에 필름으로 찍은 풍경입니다.
바람이 느껴지시나요?
오늘 묵상에 나오는 '바람풍'에 어울리는 사진같아 골라 보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