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의 현관문을 여는데 무언가가 발에 걸려 거치적거렸습니다.
아들 녀석이 자전거 타이어에 바람을 넣고 방치한 에어펌프였습니다.
대뜸 "얘는 쓰고 제자리에 놔둘 줄 몰라"
짜증 섞인 목소리로 중얼댔는데 아직 퇴근하지 않은 줄 알았던 아들이 방에서 나오며
"제가 뭐를 잘못 두었어요?"하며 제자리에 펌프를 가져다 놓습니다.
나의 짜증에 "그럴 수도 있지."하며 맞받아쳤을 아들의 태도가 달라지니
공연히 겸연쩍어 집니다.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 마태복음 15장18절
오늘 주님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라고
구체적인 설명까지 해주십니다.
요즈음 나를 사로잡고 있는 것은 비교의식, 열등한 생각입니다.
세상의 나름대로의 어느 계층의 생활을 하다가 몰락하니 전에 같이 어울리던 부류와
자신을 비교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런 생각이 갈등을 가져옵니다.
먼저 저만치 가버린 친구의 뒤를 숨 가쁘게 따라도 #51922;지를 못하니
열등감의 늪을 헤맬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자괴감으로 변해 나를 사로잡습니다.
이러한 마음이 병이 되고 혈기로 바뀌어 밖으로 표출됩니다.
작은 일에 불뚝불뚝 분을 발하는 것이 바로 그 증상입니다.
식탐이 많은 나를 가끔 아내가 무시합니다. "먹을 것만 밝히고……." 하는 말에
"그래 나는 먹는 걸 좋아해"하지 못 하고 발끈하여 함부로 말을 뱉어 냅니다.
그런 옆에서 아들이 한마디 거듭니다.
"엄마도 그러심 안 돼요. 아빠의 입장에서 생각하셔야지 상대의 기분도 배려하셔야죠."
교회도 안 나오는 아들의 태도가 며칠사이에 신기하게도 바뀌었습니다.
아들은 최근에 '카네기 인간관계론'이란 책을 보고
대인에 대한 태도를 바꾸기로 했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듣고 갑자기 패배감 같은 것이 머리에 그득해집니다.
날마다 큐티한다고 하면서 며칠간 책한 권 읽은 아들의 변화만도 못한 믿음이 부끄러워집니다.
지난 연휴 때 아내와 함께 보고 또 어제 목사님 설교에 등장한 영화'명량'의 대사가 떠오릅니다.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 있다면 그 용기는 백배, 천배 큰 용기로 배가 되어 나타날 것이다.
그것은 내가 죽는 것이다."
혈기의 근원이 되는 열등감을 없애고 자신감을 세워가는 일도
내가 잘 죽어지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나는 늘 '너는 화낼 입장이 못돼. 네 죄를 봐'하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작은 자극에도 그것을 잊고 분을 발하며 말을 함부로 해댑니다.
그것은 내가 아직 시퍼렇게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 2:20)
큐티하는 자의 삶은 매일 죽는 것 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시는 것 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매일 잘 죽어지는 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