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 18일 월요일
누가복음 22:24-34
“내가 너를 위하여”
휴가 첫날이다. 이른 새벽잠이 깨었다. 이것도 직업병인가? 3시 30분, 어김없이 눈이 떠진다.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잠을 청하다가 포기하고 말씀묵상을 시작하였다.
유월절의 주인이신 어린 양 되심을 성만찬을 통해 퍼포먼스로 보여주셨다. 주님의 몸이 찢어졌다. 주님의 피를 마셨다. 성만찬을 하는 도중에 제자 중 한 사람이 자신을 팔 것을 미리 알려주신다. 웅성거림도 잠시 이런 와중에도 누가 높으냐가 제자들의 주된 관심사였다. 이런 오합지졸 같은 제자들을 통해 전 세계를 바라보신다. 당대의 의인이었던 노아처럼 특별한 자들이 아니었다. 아브라함처럼 갈 바를 알지 못했으나 말씀에 순종한 자들도 아니었다. 지난 삼년동안 예수님께 수업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사분오열 속에 쌈박질이나 하고 있는 자들이었다. 누가는 다툼이 일어났다고 했다. 주님께서 지난 삼 년 동안 몸으로 보여주시고 가르치셨건만 그들을 도대체 무엇을 보고 무엇을 배웠단 말인가? 개탄을 금치 못하다가 바로 내가 제자들과 똑같은 자인 것을 발견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라게 된다.
예수를 믿는다고는 하지만 십자가는 싫고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고 이 땅에서는 부자처럼 살다가 천국은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서, 보험 든 것처럼 살고 있는 내 모습과 제자들이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예수님을 팔자가 있는가 하면 부인할 자를 지목하셨다. 베드로였다. 예수님은 로마병정의 창보다도 자신이 아끼는 제자로부터 버림받으시는 것이 더 아프셨을 것이다. 여기까지가 절망이라고 한다면 주님의 말씀 속에서 소망의 길을 발견한다.
31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32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실수하고 허물투성이인 나를 부르셨다. 그리고 나를 위하여 기도하신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나의 이름을 부르셨다. 땀이 핏방울처럼 흐르는 예수님의 기도 속에 나의 이름이 들어있다.
사도바울은 로마서에서 하나님의 열심을 이렇게 표현했다.
로마서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로마서 8: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자신을 부인할 베드로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위하여 기도하시는 주님으로 인하여 오늘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사도바울의 고백을 나의 가슴에 담고 하루를 시작한다.
고전15:11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