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문우답 (賢問愚答)
작성자명 [김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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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8.04.03
제목 : 현문우답 (賢問愚答)
성경 : 출5:1-21
우문현답!
어리석은 질문에 현명하게 답한다는 말이다.
현문우답!
현명한 질문에 어리석게 답한다는 뜻이다.
오늘 모세와 바로의 대화가 그렇다.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게 해 달라. 고 한다.
바로는 하나님이 누군대, 내 백성(노예)을 내어 달라고 하느냐? 고 한다.
둘 다 맞는 말이다.
모세는 하나님을 모르는 바로에게 어리석은 질문을 하고 있다.
하나님을 알거나 믿는 자에게 해야 할 말을 하나님을 모르는 자에게 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믿지 않는 사람에게 하는 말은 어리석을 말이 될 수 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고 말하는 것도 그렇고, 성령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것도 그렇고...
믿음 안에서 구원을 위해 하는 말이지만, 믿지 않는 자에게는 어리석은 질문이고 요구일 수 밖에 없다.
바로는 자신의 입장에서는 합당한 말을 하고 있다.
자신의 백성이 자신을 위하여 일하고 있는데, 무엇 때문에 역사를 멈추고 백성을 내어 줄수 있느냐고 반문하고 있는 것이다.
또 반대로 생각해 보면 바로도 모세에게 어리석은 말을 하고 있다.
모세의 입장에서 보면 하나님은 살아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대변하는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바로가 심판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바로의 말과 태도는 어리석은 것이 된다.
믿는 사람이 볼 때에 믿지 않는 자의 말과 태도는 어리석은 자의 항변으로 보인다.
모세와 바로 사이에 보이지 않는 갭이 있다.
하나님을 알고 있느냐 모르고 있느냐의 차이가 있다.
그래서
서로가 묻는 질문은 현명한 질문이지만
서로가 대답하는 답은 어리석은 답이 될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을 믿는 자는 믿지 않는 사람이 이해할 수 있게 말해야 한다.
믿지 않는 자도 자신은 하나님을 모르지만 하나님이 살아있을수도 있다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대화가 된다.
그렇치 않으면 하나님의 재앙은 재앙대로 나오고, 바로의 고집은 바로의 고집대로 나온다.
현재의 나의 모습은 모세와 바로 사이에 있다.
하나님을 믿는 것도 아니고, 믿지 않는 것도 아닌 중간지대에 있다.
그래서 모세의 말도 이해가 되고, 바로의 말도 이해가 된다.
아니 바로이 입장이 더 이해가 되는지도 모르겠다.
확신이 없는 믿음은 세상의 룰로 기울게 한다.
돈을 벌어야 한다는 세상의 룰
명예가 있어야 한다는 세상의 룰
내 것을 챙겨야 한다는 세상의 룰
자기 중심적인 사고가 당연한 것이 되어버리는 삶을 살 수 밖에 없다.
아주 오래 전, 교회에서 문학의 밤을 할 때에 주여 어찌 하오리가? 라는 대본을 썼다.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 있는 주인공의 갈등을 그렸다.
반응은 아주 좋았다.
하지만 지금 여전히 주여 어찌 하오리까? 를 외치고 있는 나를 본다,
재앙이 와야 하나님을 인정할 수 있는가?
고난이 와야 하나님을 인정할 수 있는가?
믿는 자에게는 고난이, 믿지 않는 자에게는 재앙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가?
모르겠다.
아무튼 모세의 입장이든, 바로의 입장이든 한 쪽에 있어야 편할 텐데....
어제부터 QT자료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한 곳에 보관하기 쉽고, 찾기 쉽게 만들기 위해서다.
QTM에 처음 QT를 올린 2003.9.23부터 정리하기 시작했다.
옮기면서 그때의 QT와 사람들의 댓글들을 읽어 보았다.
그 때의 느낌들이 새롭게 다가왔다.
어떻게 저렇게 QT를 할 수 있을까? 내가 봐도 대견해 보였다.
마음 한켠에 대견한 나의 모습도 있었지만
다른 마음 한켠에 지금의 모습이 반추되어 지금의 모습이 초라해 보였다.
언제까지 하나님과 바로 사이에 있어야 할까?
그 답은 모르지만 바로처럼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하나님을 알고 싶지는 않다.
아직은 모르지만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여전히 내 앞에 있는 과제이고 해결해야 할 믿음의 문제다.
지금 말 할 수 있는 것은 결코 하나님을 포기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지만, 확신이 서지 않지만, 여전히 내가 나아가야 하고 찾아야 할 나의 신이다.
다시금 처음 QT를 올리던 때의 열정을 기억해야 겠다.
다시는 중간지대에 머물지 않는 QT를 해야겠다.
(믿음의 여부를 떠나서 묵상하는 것 자체가 나는 좋다.)
더불어 바로를 설득할 수 있는 지혜로운 모세가 되어야겠다.
현명한 질문에 현명한 답을 들을 수 있는 믿음과 지혜의 사람이 되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