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 16일 토요일
누가복음 22:14-23
“새 언약”
그토록 원하셨다고 했다. 기다리고 기다리셨다. 자신의 몸을 찢고 피 흘리심의 새 언약을 맺기 위해서였다.
애굽에 10번 째, 재앙이 내리던 날,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밤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문설주에 우슬초로 어린양의 피를 발랐다. 밤이 지나고 애굽에 장자와 초태생 모든 동물들이 죽었던 그날을 유월절이라고 한다. 그리고 애굽의 포로생활에서 벗어나 막다른 골목 홍해를 가르시는 하나님 앞에서 합동세례식을 거행했다. 그리고 광야생활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신령한 음식 만나를 먹었다. 같은 음료를 마셨다. 동일한 주거환경 가운데 살았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평균케 하시는 하나님의 가르침이셨다. 이것을 광야교회의 성만찬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 후, 1500년의 세월이 흐른 후, 주님께서 잡히시던 전날 밤, 성만찬을 제정하신다. 그리고 기념하라고 말씀하셨다. 기념이라는 뜻은 기억하라는 것이다. 그 날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유월절을 기념하며 애굽에서 400년 간 포로 된 자들이 자유자로 거듭난 것을 기억하는 것처럼 성만찬은 ‘죄의 포로’ 되었던 자가 ‘자유자’로 거듭 난 것을 기억하는 자리이다.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됨을 기억하는 것이다. 새 언약을 기억하는 것이다. 죄 사함에는 어느 누구도 예외가 없다. 예수님의 피로만 용서 받는다는 평등의 원리가 적용되는 시간이다. 낮아짐의 자리였다. 죄인으로서 감히 쳐다볼 수 없었던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그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초심으로 돌아가는 자리이다. 주님과의 첫 사랑을 기억하는 자리이다.
記念(기념) remembrance; commemoration; memory
주의 만찬은 주님이 잡히시던 전날 밤으로부터 출발한다. 자신의 죽음을 기다리면서 온 인류를 가슴에 담기 위해 제자들과 함께 자리를 하셨다. 누가복음 22:7절에서 “이에 잔을 받으사 감사기도 하시고”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주님의 손에 들린 잔은 3년 동안 동고동락했던 제자로부터 버림받는 背信(배신)의 잔이었다. 가장 사랑하는 제자까지도 세 번이나 모른다며 맹세한 否認(부인)의 잔이었다. 자고 있는 제자들을 향해 한 시도 깨어 있을 수 없느냐며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다. 주님의 고뇌와 아픔을 헤아려본다. 십자가는 아무도 함께 할 수 없는 홀로 걸어가신 고독한 길이었다. 그럼에도 주님은 감사하셨다.
마태복음 26:28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떡을 먹고 잔을 마실 때마다, 주님의 죽으심을 돌아보는 것이다.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것이다. 더 나아가 주님이 오실 때까지 십자가를 전하는 것이 바로 성만찬의 참된 의미이다. 그들이 잔을 들어 건배하면서 외쳤던 구호가 있었다면 ‘주의 죽으심을 위하여’ 또는 ‘다시 오실 예수님을 위하여’였을 것이다. 성도의 존재의 이유가 성만찬에 스며있는 것이다.
오늘도 만찬은 계속 된다. 초대 받은 성도들이 모두 함께하는 성만찬이 되도록 서로 기다려주고 배려하는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해본다.
만찬의 끝은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계속되는 현재진행형이다. 오늘도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을 부르시며 끊임없이 초대하고 계신다. 이 주님의 만찬장에서 승리의 잔을 마시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