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상황을 주님은 이렇게 설명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보내는 것이 양을 이리가운데로 보내는 것 같다.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한에게 오실 메시아의 길을 예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요한은 광야에서 석청과 메뚜기를 잡아먹으며
약속하신 메시야가 오니까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외쳤습니다.
그러면서 그에게 오는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이 오는 것을 보고
독사의 자식들이라 칭하며 회개하라고 외쳤습니다.
그리고 옳고 그름의 문제로 자기 동생의 아내를 취하는 해롯 왕의 행위를
옳치못하다 책망했습니다.
그것으로 인하여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죽음을 예수님에게 전했지만 예수님은 거기에 대하여
일언반구 말씀이 없으셨고 복음을 전하러 다른 곳으로 가셨습니다.
여기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중요한 메시지는
첫째 이 악한 세상은 옳고 그름의 문제로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로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복음뿐이라고 삶으로 말씀해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나도 지금까지의 상황상황 속에서 옳고 그름의 문제를 가지고 상대를 설득하고 이해시켰지만 결국은 오히려 더 멀어지는 상황만 전개 된 것 같습니다.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내가 먼저 말씀에 순종하므로
나의 삶의 현장에서 역사하시는 예수님을 보여줄 수박에 없다는 것을
이제야 조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내의 습관을 옳고 그름으로 따지지 않겠습니다.
두 번째는 요한의 죽음을 놓고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하나님의 뜻은 이것 역시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에게 주신 사명을 다 감당했느냐의 문제인 것입니다.
요한은 세상 적으로 보면 억울한 죽음을 당한 것 같지만
그는 오실 메시야의 길을 예비하는 사명을 온전히 감당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으로부터 여인이 낳은 자 중에서 가장 큰 자라 칭함을 받았습니다.
가장 억울한 죽음을 당하신 분이 누구십니까?
바로 예수님 자신 아닙니까!
내게 주신 사명을 다 감당한 후에 나는 무익한 종리라
내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는 고백이 나에게 나올 때
그 삶이야 말로 사명 받은 자의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도 주님께서 주신 사명이 무엇인가를 날마다 묵상하며
하루를 온전히 감당하는 사람이 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