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 14일 목요일
누가복음 22:1-6
“유다 너 마저도…”
외로우셨다.
자신을 배반할 자가 지난 삼년 동안 동고동락 했던 제자 중 하나였다. 사랑했던 사람으로부터의 배신보다 더 큰 고통은 없다.
로마의 황제였던 줄리어스 시저가 자신을 반대하는 무리들의 반란에 죽을 때, 그 유명한 대사 한 마디가 생각이 난다.
“부르터스 너 마저!”
자신의 양아들로 총애하였던 부르터스의 칼을 맞으면서 신음처럼 내뱉던 시저의 마지막 고백이다. 아마도 칼보다 사랑하는 자의 배신이 더 아팠을 것이다. 그때 저항하던 칼을 내려놓고 죽음을 맞는다.
시저는 자신을 죽이려는 자를 몰랐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자신을 팔자가 누구인지를 아셨다. 그럼에도 그 길을 피하지 않으셨다. 알면서도 걸어가신 길이 바로 십자가의 길이다.
“유월절이라 하는 무교절이 다가오매” 출애굽기 22:1절
출애굽 당시 긴박했던 그 날, 어린 양의 피가 문설주에 발라지던 그 날, 그들은 누룩이 없는 빵을 먹고 있었다. 애굽의 마지막 재앙이 양의 피를 바른 곳마다 피해간 그 날이었다. 애굽 전역에 장자가 죽고 통곡이 사무치던 밤이었다. 죽음이 넘어갔다 해서 부쳐진 유월절(踰越節)이었다. 그날을 기념하여 무교절을 지켰다.
출애굽 후, 1,476년 동안 먹었던 무교병이었다. 그들의 역사였다. 매년 먹었던 누룩 없는 빵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문설주에 바른 어린 양의 피가 예수님의 그림자였음을 알지 못했다.
유월절은 자신들을 구원하셨을 뿐만 아니라 뒤쫓아 온 애굽 군사들의 칼날 앞에서 지켜주셨던 하나님을 기억하는 날이었다. 두려워했던 죽음의 순간이었다. 그들은 바다를 가르시는 하나님의 위엄 앞에서 육지처럼 건넜다. 모세를 통해서 술렁이는 민중들의 원망을 잠재웠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생명의 길이었으나 애굽 군사들에게는 죽음의 바다였다.
홍해는 죽음과 생명의 경계선이었다. 그 죽음의 바다를 건너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다. 유월절의 어린 양이 되시기 위해서였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다가온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 수많은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몰려들었다. 그때 모세를 향해 돌을 들었던 이스라엘 백성처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죽일까 모의하고 있었다. 그들이 궁리한 이유가 백성들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민심을 보면서도 하나님의 마음을 몰랐다.
정작 유월절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성전에 오셨으나 그 땅 백성들이 미처 알아보지 못했다. 오히려 죽일 것을 모의하고 있었다. 그 정점에 가룟 유다가 앞장서고 있었다.
주님은 외로우셨다. 아무도 대신 할 수 없는 길이었다. 죽음의 바다 홍해 앞에 서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