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 9일 토요일
누가복음 21:5-9
“가난한 과부와 성전”
가난한 과부의 연보를 칭찬하셨다. 그때 어떤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들이 가리키는 곳은 성전이었다. 그들의 자부심이었다. 아름다운 돌과 헌물로 꾸며져 있었다. 가난한 과부 두 렙돈으로 이런 건물을 지을 수 있겠느냐는 詰問(힐문)이었다. 예수님을 현실을 度外視(도외시)한 분이라고 몰아세우고 있는 것이다.
정치적 목적에 의해서 건설된 헤롯성전은 솔로몬 성전보다 더 화려하고 규모가 더 웅장하였다. 외부를 금으로 장식하였다. 화창한 날에는 너무 눈부셔서 성전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고 한다. 외세에 의해 점령당한 이스라엘이었지만 자신들의 민족성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지탱하게 한 성전이었다.
그런 성전이 “너희 보는 이것들이 날이 이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가히 충격을 넘어서 혁명적이었을 것이다.
물리적으로는 AD 70년경에, 로마의 압제에 대해서 일어선 유대교도들과 티토 장군이 이끄는 로마군과 치열한 싸움이 있었는데, 결국 유대교도 측의 패배로 끝나게 되고, 성전을 포함한 예루살렘 안의 건물은 파괴되어 불타버리게 된다.
여기서 등장하고 있는 어떤 사람들은 마 24:1-2, 막 13:1-2에서는 제자들을 말하고 있는데 누가는 의도적으로 감추고 있다. 그것은 당시 제자들뿐만 아니라 누가복음의 첫 독자인 데오빌로와 함께 나를 비롯한 오고가는 모든 세대에게 전하려는 속 깊은 마음이 감추어진 것이다.
누가는 너희들이 그토록 신봉하는 모든 것들이 무너질 때가 반드시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동안 가치 있게 생각했던 패러다임을 바꾸라는 말씀이시다. 허상에 몰두해 살아온 인생을 유턴하라는 말씀이시다. 이 땅에서 추구하는 것들이 무너져야만 세워지는 나라가 하나님 나라이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으로 가던 중에 사마리아 땅을 가셨다. 통상적으로 유대인들은 요단강을 건너 사마리아 땅을 피해 여행하는 것이 관례였는데 그것을 무시하시고 수가성에 가셨다. 의도적인 방문이셨다. 그곳에서 가련한 한 여인을 만나신다. 그녀에게 물을 달라 청하신다. 그녀는 유대인과 사마리아인과는 상종치 않는 관계인데 어찌 물을 달라느냐? 의문을 표시한다. 그때 그 유명한 생수를 말씀하신다. 목마르지 않는 물을 말씀하셨다. 그녀는 목마른 영혼이었다. 과거에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현재 사귀고 있는 남자도 남편이 아닌 여자였다. 그녀의 과거를 처음 보는 유대인이 줄줄이 꿰고 있었다. 여자의 시선이 확 변하였다.
“여자가 이르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요한복음 3:19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요한복음 4:21,23절
당시 사마리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에 가지 못하는 대신에 그리심산에 성소를 마련해놓고 그곳에서 예배를 드렸다. 이러한 장소에 얽매인 만남을 허무시겠다는 말씀이셨다. 일정한 시간 일정한 장소에 국한하지 않으시겠다는 것이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바로 임마누엘 하나님이 되시기 위해서였다. 눈에 보이는 성전을 허무셨다. 우리 몸을 성전 삼으셨다.
수가성 가련한 여인을 찾아가셨다.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의 헌금을 보고 계신 그분이 나의 마음 한 복판에 좌정하고 계신다. 이 땅에서 추구하던 모든 것들을 허물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네 상한 마음을 내게 가져오라고 말씀하신다. 주님 앞에 설 수 있는 자격이 바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이기 때문이다. 이 놀라운 하나님의 일하심을 노래하는 아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