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휴가에 맞춰 창원집에 내려와 아들,딸과 함께
부산 해운대 한바퀴 휘~익, 물회 먹고 영화 한 편 봤습니다.
실은 영화 보면서 스스로 계속 큐티를 하고 있는 내 모습에
웃음이 나서 영화 마치고 집에 와서 바로 나눔을 하고 싶었으나
밤도 깊었고 몹쓸 저질체력으로 걍 덮어뒀는데
어제 큐티 나눔에 고급스런 명량썰이 풀어져 있네요.ㅎㅎ
저는 애 셋 낳은 아줌마이고 대강철저히 사는 사람이라
잘 기억도 못하고 우리들 교회를 안지 얼마 되지 않아서
적용도 잘 못하지만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고
매사를 적용을 하며 큐티에 미쳐가고 있습니다.ㅎㅎ
영화 '명량'을 보면서 대사를 내 식대로 적용했던 것을
생각나는 대로 주절거려 보겠습니다.
1.이순신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때 그 용기는 백배가 되고 천배가 되지"
저는 이사야 41장10절 말씀을 중얼거렸습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영화에 말씀이 더해지니 감동이 더해지고
은혜가 되고 더욱 몰입이 되었습니다.
내 앞에 해석할 수 없는 사건이 오니 두렵고 놀라면서도
자존심 상하지 않으려는 마음으로 대항하는 것을 용기로 착각을 했고
죄인임을 깨닫고 살지도 못하면서도 이럴때는 말씀을 잘도 갔다붙여
'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너를 도와주리라
하나님 말씀하셨으니 책임지세요'
하며 하나님앞에 생떼를 썼습니다.
지금 말씀에 견주어 나를 돌아보니 한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영화속의 두려움을 용기로 승화시킨 것을 내게 적용하니
두려워하고 놀라는 나의 환난의 사건을 통해
말씀을 듣고 깨닫고 적용하여
나의 죄를 보고 인정하며 회개하고 공개하며
수치를 망대에 걸어 본을 삼고 기억하며
예배로 나아가며 낙담하여 쓰러짐없이
생활의 활기를 찾고 무너진 성벽을 중수하며
구속사를 위해 고난의 길로 저벅저벅 걸어가는 것이
용기이고 이렇게 말씀으로 매일 새로워져 갈 때
하나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붙들리라가 이루어 질 수 있음을 고백합니다.
2."그것이 가능한지요.두려움을 용기로 바꾸다.....?"
이순신이 '내가 죽어야겠지!'라고 말합니다.
진정 죽으려 하는 자는 살 것이요 살고자 하는 자는 죽을 것이다.
한 명이 길목을 막고 있으면 천명도 무섭지 않다고 말합니다.
죽어야 사는 인생입니다.
요한복음12장25절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참으로 기가 막힙니다.
예수를 알지 못하는 사람도 죽어야 사는 이치를 알고 있는데
신자라 하면서도 죽지 못하고 뻣뻣하니 말입니다.
생배추 오래보관도 안되니 소금에 절여 배추 숨 죽여
맛깔난 김치 담아서 여러입을 기쁘게 하듯이
고난소금 왕창 뿌려 숨 죽고 간이 잘 밸때 까지 기다려
말씀양념 잘 버무려 목장에서 나누니
살맛 잃은 여러 사람 살리는 반찬거리 되라고 하니
이것이 바로 죽는것이 사는 것입니다.
신김치 목원은 성령의 불에 자글자글 끓여 주면
깊은 맛 자랑하는 김치찌게신자 되니
또 끓여 죽는 것이 다시 사는 길인 것이거늘
이것을 알게하신 하나님께 감사할 뿐입니다.
3. 이순신의 곁에 있는 신복은 언제나 '예'합니다.
이순신의 분부가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고개를 갸웃거리다가도 언제나 '예'입니다.
이런 예스맨이 있어서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습니다.
이순신을 대적하고 전쟁터에서 군사의 소임을 다하지 않고
자기목숨을 사랑한 자들은 다 죽었고 오명도 남겼습니다.
디모데후서 2장3,4절
네가 그리스도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지니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부르심과 보내심에 언제든지 "예" 해야
그리스도의 좋은 병사이고 그리스도와 함께 못박히는 고난이
지나가야 보라 새것이 되었다 할수 있으니 이 일을 어쩌면 좋겠읍니까?ㅜㅜ
잘 견디고 순종할 힘을 달라고 하나님께 떼 쓰는 수 밖에요
이런 떼부리는 기도는 진노하심으로 응답하지는 않으시겠죠?ㅎ
궁디 탁탁 두드려 주시며 호호 불어가면서 천국까지 델꼬 가시겠죵? ㅎㅎ
4. 이순신은 대조기,회오리 등 물 때를 볼 줄 알았고 그것을 이용했습니다.
섬을 등지면 소용돌이가 약하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백병전까지 치루며 버텼지만 소용돌이 속으로 삼켜져 갈때
백성들의 어선들이 합심하여 당기어 낼때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사명을 다하고 영 죽을 줄 만 알았는데
나 때문에 수고하는 가족들과 얽힌 사람들...
사람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본 듯 했습니다.
말씀의 분별력 있는 처방과 적용, 그리고 기도의 띠 줄로
서로를 살리는 목장모임이 바로 나를 구조하는 사건인 듯합니다.
5. 전쟁에 나아가는 전함 한 척에는 각기 다른 위치에서의 역할이 있었습니다.
명령하는자,알리는자,각기 다른 병기 다루는 자,노젓는자, 식량 다루는 자등...
주어진 역할에 소임과 복종을 잘 하며 쓰임받을 때 전쟁을 치룰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 내게 주어진 소임은 무엇인가?
나는 고통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죽기까지 복종할 수 있는 사람인가?
묻고 또 묻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