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 7일 목요일
누가복음 20:41-47
“그리스도”
하나님이셨다. 그분이 오신 공간이 구유였다는 사실만이 송구한 것이 아니다. 시간이라는 울타리 안에 들어오신 것이 더 위대한 사랑임을 느낀다. 하나님께서는 과거와 현재 미래의 시제가 없으신 분이시다. 언제나 영원이란 시간만이 있으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 영원한 자유를 포기하시고 시간이라는 제한된 세상 감옥에 스스로 갇히셨다. 절대자이신 그분께서 나를 만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이다.
부활 논쟁에 이어 자신의 정체를 밝히신다. 그들이 꿈꾸는 왕 다윗의 말을 인용하신다.
“시편에 다윗이 친히 말하였으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등상으로 삼을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였느니라.”
다윗은 이미 그리스도를 만난 자였다.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자였다. 그리스도의 先在性(선재성)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믿음의 사람들은 예전이나 오늘이나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며 인생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기다림과 인간의 기다림이 만나는 곳이 바로 은혜의 나라요 하나님 나라이다.
그분께서 사두개인들 앞에 서계셨으나 그들의 눈에는 거짓선생 정도로만 보였다. 말씀 속에 감추어진 그분께서 나타나셨으나 정작 백성의 지도자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기다림은 그리움과 함께 걸어가는 同伴者(동반자)이다. 그리움의 또 다른 말이 사랑이기에 그분을 한마음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나라를 위해 살아가는 마음이다. 내가 이 땅에 존재하기 전부터 나를 사랑하셨기에 마땅히 그분을 위하여 살아가는 것이 구원의 길이다.
하나님께서는 말로만 사랑하시지 않으셨다. 자신의 살을 찢으시고 피 흘리셨다. 주리셨고 일하셨다. 인간이 거쳐야할 모든 고통을 직접 온몸으로 체험하셨다. 절대자이신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친히 고통을 자청하신 것이다. 끝내는 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셨다. 이것은 감동이 아니다. 이것이 바로 기적이다. 이 땅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시며 외치셨다. ‘다 이루었다.’ 이 한마디에 담긴 나를 향한 사랑의 고백이 들리는가? 그렇다면 그분을 기다리는 것이 바로 믿는 자들이 걸어가야 할 길인 것이다.
찬송가 304장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로 삼아도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할 수 없겠네.”
시인의 고백을 가슴에 담고 하룻길을 걸어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