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2:22-37)
말 못하는 자(22),
말로 인자를 거역하는 자(32),
말로 성령을 거역하는 자(32),
말로 선한 것을 내는 자(35)
하나님 나라를 갈 수 없는 사람은... ‘말로 성령을 거역하는 자(32)’라고 합니다.
하나님 나라 행.... ‘말’로 결정됩니다.
‘말’.. 아직도 자신이 없습니다.
남자 다섯 형제들의 막내로 크면서 ‘남자의 말’에 익숙합니다. 다행히 욕을 듣고 크지는 않아서 욕을 하지는 않지만, 무뚝뚝하고 거칠고 원색적이고 직선적입니다. 그래서 신혼초에는 나의 말투로 인해 아내가 상처를 적지 않게 받았습니다. 직장의 동료나 전공의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개과천선’.... 여자 둘과 살면서 무지 말이 순화되었습니다. 우리들 공동체에 와서도 역시 많이 훈련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들공동체의 ‘솔직’ 코드가 저의 말실수를 낳을 때가 있습니다. 전혀 의도하지 않게, 관심의 표현으로 쓴 한마디 표현이 목원과 지체에게 상처를 줄 때가 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죄송함을 표합니다^^).
‘여보, 당신 사랑이 식은 것 같아’
몇주전, 아내가 토요일 오후 퇴근하면서 현관문을 들어서는데도 컴퓨터 앞에 앉아 일에 빠져서 내다보지도 않는 저를 보고 한마디 던집니다. ‘아차~’ 총알같이 현관문으로 나갑니다.
‘아빠, 나 사랑하는 것 맞아?’
접시에 몇 개 안남은 체리, 복숭아 몇조각을 쟁취하기 딸과 공방전을 벌일 때 딸이 이럽니다. 갑자기 포크를 내려놓습니다.
‘성령을 거역하는 말’...
분명, 하나님의 병고치심을 의심하는 말 (24), 예수님과 함께 아니하는 행위(30), 성령을 모독하는 말(31)이기도 하지만...
나에게는 ‘거친 말, 직선적인 말’ 일수도 있고, ‘표현치 못하는 무뚝뚝한 말’일 수도 있습니다.
다행히, 오늘은 말씀적용으로 가장 위험한 수술방에서 ‘말조심’을 잘하고 나왔습니다.
적용) 직장에서 동료. 전공의들에게 좀더 사랑의 언어를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