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 6일 수요일
누가복음 20:27-40
“부활 논쟁”
사두개인들은 솔로몬 당대의 대제사장 사독의 후손들로 추정되는 유대의 종교집단을 가리킨다. 성전을 운영하며 대제사장들을 통제했다. 친 로마 성향의 관료들이었다. 모세 오경 만을 정경으로 인정했고 토라에 언급되지 않았다고 하여 죽은 자의 부활을 배격하였다. 지금으로 말하면 기득권층 중의 기득권층이었다.
자신들이 부정하는 부활을 논쟁의 한복판에 끌어 드림으로서 서로 앙숙관계에 있던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신학의 우월성을 증명하려고 하였다. 한편 부활을 부정하는 근거를 모세의 글을 인용하면서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리려고 하였다.
바리새파 사람들이 민중들을 정신적으로 이끌고 있었다면 사두개인들은 실질적 종교적 권한을 행사하고 있었다. 늘 부딪칠 수밖에 없었던 두 종교집단이 예수님을 미워하는 데는 하나가 되었다.
이들이 믿고 있는 부활이 없다는 것은 그 근본에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권력과 부와 연관이 있다. 현세에 대한 욕망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형사취수법이라는 제도는 씨족사회에서 땅을 분깃으로 세습되는 시기에 주어진 법이다. 대가 끊어진다는 것은 분깃 즉, 생존이 걸려있는 땅을 잃어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땅은 물려받는 것이지 사고 팔 수가 없었다. 설혹 땅을 팔 수밖에 없다 할지라도 희년이 선포될 때 땅 주인에게 돌려주어야만 했다.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분깃이 바로 천국의 그림자였다. 포기할 수 없는 분깃이 바로 부활의 모형이었기 때문이다.
사두개인들이 들고 나온 부활의 문제는 토론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시비를 걸고 있는 것이다. 일전에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를 통해서 부활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사두개인들은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부와 명예가 부자의 모습으로 비쳐졌을 것이다. 주님께서 내일을 이야기 하셨는데 그들은 오늘만을 위해 살아가고 있었다. 나사로의 삶은 싫고 부자의 삶은 버릴 수 없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내일을 넘어 모레를 부정하고 싶었을 것이다.
부활의 나라를 말씀하신다. 그곳은 손자가 없는 곳이다. 다만 아들과 딸만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다시는 죽음이 없는 나라이다. 한 아버지께서 다스리는 나라이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비밀의 인봉을 떼신다. 사두개인들이 그토록 믿고 있는 모세오경을 인용하신다.
“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것은 모세도 가시나무 떨기에 관한 글에서 주를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라 칭하였나니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 누가복음 20:38-39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다. 내 심령 가운데 계셔서 나의 몸을 성전 삼으시고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 성령님을 찬양하는 아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