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5일 큐티 마12:9-21
"본질과 비본질"
질문 속에 감춰진 엄청난 비밀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오늘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회당에서 아주 평범한 질문을 던집니다.
이 질문은 누구나가 가볍게 대답할 수 있는 질문입니다.
예를 들자면 저마다 안식일이기 때문에 일을 해서는 안 되니
병을 고쳐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거나 아픈 사람이니까 고쳐주어야 한다거나
아니면 대답이 난처하기 때문에 잘 모르겠다거나
어떻든 어떤 대답이든지 평상시에 생각하고 있는 데로
힘들지 않고 할 수 있는 대답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 어떤 대답에서도 자유로울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예수님은 역으로 질문한 사람이 대답을 하게 하므로
자연스럽게 그 대답을 대신하는 지혜를 발휘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질문을 통해 비 본질과 본질의 차이가
얼마나 중요한 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다고 하십니다.
이는 사람이 양보다 귀하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무슨 말씀이냐 하면 안식일에 규례를 따르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이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생명을 위해서 안식일이 있는 것이지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서 생명이 있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옳고 그름의 문제 이전에 무엇이 더 중요한가를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시면서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손 마른 사람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사건을 통해서 예수님을 죽이려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기적과 이사로는 사람을 구원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문둥병자 열사람이 고침을 받았지만 한사람만 구원받은 것처럼 말입니다.
오늘도 이적의 역사를 보고도 오히려 예수님을 죽이려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자기를 따르는 많은 사람을 고쳐주시고
그들에게 이르기를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고 경고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직설적으로 하면 병자들이 많이 몰려오면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신 것은 병자를 고침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병자를 고쳐주는 것은 안식일을 지키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지만
이것역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본질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본질을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본질을 잊어버리면 비본질을 본질로 알다가
그것으로 실족하고 넘어지는 것을 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이 병 고치는 것을 알고
많은 사람이 병고침 받기를 원하여 많은 환자가 몰려온다면
그것은 에수님을 알리고 어쩌면 구원하역을 더 잘할 수 있지 않을 까 하며
생각하지는 않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이것으로 넘어진 이단을 잘알고 있습니다.
그는 바로 많은 사람의 병을 고쳐 주므로
그 유명세로 그도 죽고 남도 죽이는 우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충만한 사람은 착한 종이 되어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쁜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오로지 어떤 악한 죄를 지어 죽을 수박에 없는 악한 자라도
그 한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그 한 영혼을 살리시겠다는 것입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느냐 하는 문제에 대한 답을 주셨습니다.
특히 저에게 주시는 말씀은 사업을 성공적으로 잘해서
많은 사람에게 선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사업을 하는 하루하루의 삶의 현장에서 어떻게 영혼을 살리기 위해서
내가 하여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 같으면 많은 병자를 살려 예수님의 이름을 드러내야 한다고 하겠지만
결코 그렇게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국 자기의 이름을 드러내게 되며 종내에는 박태선 처럼 죽게 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통해서 상업은 성공에 목적을 두어서는 안 되며
사업을 이루어 가는 과정에서 어떻게 하면 영혼을 구원할 수 있을 까를
진정 생각하여야 한 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병 고치는 것도 선한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한 영혼을 살리는 것이 더 중요하는 것을 말씀하시며
이것이야 말로 주님의 본질이라는 것을 저에게 말씀하고 계심에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