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 4일 월요일
누가복음 20:9-18
“비유로 답하시다”
어느 하루였다. 대제사장들,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떼로 몰려왔다.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내쫓으신 일과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하여 가르치는 일이 어디에 근거하고 있는지를 따져 물었다. 그들의 눈에는 갈릴리 방언을 쓰고 있는 시골뜨기로 밖에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요한의 세례를 묻고 계셨다. 그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자격을 따졌는데 되물으셨다. 그들은 당황하였다. 모든 백성들이 세례요한을 선지자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얼버무리자 주님께서도 대답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셨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셨다. 백성들에게 가르치시던 일을 계속 하셨다.
그 자리에 함께 있던 대제사장들도 온 무리들과 함께 들었다. 포도원 비유로 말씀을 시작하셨다. 예수님께서는 대답을 회피하신 것이 아니었다. 그들에게서 고개를 돌리셨지만 우회적으로 다시 한 번 그들에게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하신 것이다. 그러나 같은 자리에서 같은 내용을 들었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즉시 잡으려는 계획을 세운다. 그들은 백성들이 무서웠다고 했다. 민심은 읽을 줄 알았다. 그러나 천심을 잃어버린 자들이었다. 진정으로 두려워할 분이 하나님이심을 그들은 看過(간과)하고 있었다. 여기에 비극이 있다.
그들도 이사야를 알았다. 아모스를 가르쳤지만, 자신들 앞에서 말씀하시는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자신들이 갖고 있는 기득권에 가로막혀 주님을 보지 못한 것이다. 이천년 전, 누가가 이 말씀을 기록한 이유는 무엇일까? 일차적으로는 대제사장 무리들의 잘못을 지적한 것이지만, 이차적으로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동일하게 되묻고 계신 것이다.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된다.”
이 말은 폴란드에 있는 비극적 역사의 산물인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적혀 있는 말이다.
짧지만 오늘 말씀 속에서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오늘 비유를 통해서 내게 말씀하신다. ‘아담아(길우야) 네가 어디 있느냐?’ 묻고 계신다. 대제사장 무리를 통해서 말씀하신다. ‘삭개오(길우)야! 속히 내려오너라.’ 부르고 계신다. 오늘을 살아가는 나를 향한 부르심은 사랑이요 기회의 시간이다.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그러면 기록된 바,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함이 어찜이냐 무릇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20:17-18
건축자의 버린 돌을 모퉁이 머릿돌 되게 하시는 능력의 하나님을 찬양하오며, 하나님 사랑의 또 다른 말 기다림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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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화대교 근처 둔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