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본문은 마태복음 11장 15-24절 말씀입니다.
어제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세 번씩이나 광야에 있는 세례 요한을 보았을 때
우리가 무엇을 보러 나갔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를 그 때 그 때의 감정에 따라서 표리부동 하며 요한이 먹고 마시지
않는다고 비난하고 예수님께서는 먹고 마신다고 비난하는 아이들에 비유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하신 고을들이 회개하지 않음을 책망하십니다.
예수님은 이방인들의 마을과 심지어 소돔조차도 회개했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행동은 심판의 날에 큰 곤란을 겪을 것임을 경고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저를 죄로부터 자유롭게 하시고 천국에 자리를 보장해주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은 이러한 값없는 은총을 감사히 받고 나를 변화시켜 가시는
주님에게 순종하는 것뿐입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내가 판단하고 이루려는 삶의 태도를 바꾸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끄시는 나의 삶에 방식에 초점을 맞추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조금 더 변화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과 저의 기대는 다릅니다. 물론 이것은 예수님께서 오늘 말씀
에서 지적하셨듯이 하나님의 잘못이 아니라 저의 잘못입니다.
어제 저희 목장에서 한 부부가 서로 비난하며 혈기를 내며 다퉜습니다.
그들 모두 하나님이 아닌 그들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었으므로 오늘 말씀의
아이들처럼 앉아서 서로에게 불평을 쏟아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서로를 증오하는 눈빛에 저는 매우 놀랐습니다.
그 눈빛을 보았을 때 제가 처남에게 보내던 눈빛, 특히 빨랫감 처리와 같이
그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을 목격하게 될 때 처남을 향한 미움의 눈빛이
저에게도 똑같이 있었음을 느꼈습니다.
그가 처리하지 않은 옷을 볼 때 잘 말리고 개켜서 그의 방에 가져다주기 보다는
그 옷을 찢어버리고 싶다는 못 된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바로 고라신이고 가버나움과 같은 사람입니다.
저는 처남이 심한 교통사고를 당하고 중환자실에서 많은 기도로 회생할 수 있었던
일을 목격했습니다.
그의 육체적인 재활과정을 지켜보았고
그가 교회에 나오고 예배와 목장에 참석하는 것을 지켜보았고
그가 공립 장애인학교에 다니게 된 것을 지켜보았고
그가 홈플러스에 취업하는 것도 목격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러한 기적을 행하신
하나님을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처남의 삶에 함께하신 사랑의 하나님이심에 초점을 맞추지 못하고 처남과 함께 살면서
겪게 되는 일상적인 스트레스가 신경 쓰일 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내 삶을 반드시 이렇게 이끌어 주셔야 한다는 제 기대는 오히려 하나님이
제 삶에 일으켜 주실 기적을 방해할 뿐이었습니다.
처남의 허영심과 이기심과 교만함, 자기 의로움, 부주의함, 자기 통제력의 부족, 어수선함,
남을 배려치 않는 행동에 대한 저의 불만이 하나님의 기적을 바라보는 관점으로 변화되기를
바랍니다.
처남을 통해서 제 삶이 미워하는 삶이 아니라 섬기는 삶으로 바뀌기를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여러 차례의 경험을 통해 이것이 제 힘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만이 이 일을 하실 수 있다는 생각으로 변화되어야만 합니다.
처남을 통해서 주님께 초점을 맞추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실제로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목격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적용: 처남의 빨랫감을 대할 때마다 ‘감사합니다. 주님‘이라고 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