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 1일 금요일
누가복음 19:41-48
“예수님의 눈물”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으로 향하던 길에서 찬송이 터져 나왔습니다. 수많은 무리들의 입술을 통해서 왕의 입성을 축하한 것입니다. 그러나 왕의 모습이라고 하기에는 초라한 모습이었습니다. 새끼 나귀를 타신 모습을 보면서 당당하기 보다는 오히려 우스꽝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퍼포먼스는 이미 스가랴를 통해 예언 된 행동이었습니다.
스가랴 9:9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
또 하나의 말씀 퍼즐 조각이 맞춰지는 순간입니다. 그러나 그 앞을 가로막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어떤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의 요청을 단호하게 거절하셨습니다.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이 돌들이 소리 지를 것이다.”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소명을 선언하십니다.
오늘 나는 남산에 올랐습니다. 주님께서 예루살렘의 멸망을 미리 보신 것처럼 서울 시내를 바라보았습니다. 천만이 넘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입니다. 멀지 않은 곳에 교회가 보입니다. 수많은 붉은 십자가가 세워진 서울을 바라봅니다. 어느 때 보다도 밝아진 조명 아래 서울의 밤은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마음은 점점 더 각박해졌습니다. 밝아진 서울 하늘아래 사는 사람들은 성벽을 쌓고 살아갑니다. 제가 살고 있는 빌라만 해도 바로 옆집에 누가 사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이웃이 사라진 시대입니다. 서울의 야경이 아름다운 만큼 사람들의 마음의 등불은 꺼져가고 있습니다. 어두운 시대입니다.
주님의 눈물은 예루살렘 성이 무너질 것을 미리 보셨기 때문입니다.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는 파괴를 보셨습니다. 자녀들이 무참히 살해되는 슬픔의 날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심판의 날을 그들은 알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다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42절
6.25를 경험하진 못했지만 그 참상을 배웠습니다.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은 빌딩 숲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눈을 감았습니다.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을 만큼 파괴 된 서울을 상상해봅니다. 폐허로 변해버린 서울거리를 바라보면서 눈물이 흐릅니다. 거리에서 먹을 것을 찾아 헤매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눈을 떴습니다. 서울은 여전히 평화롭습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폐허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화려함 뒤에 감추어진 인간들의 맨얼굴을 봅니다. 죄로 무너져 내린 인생들의 신음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옵니다. 살려달라고 외칠 수도 없는 막다른 골목에서 죽어가고 있습니다. 죄가 죄인 줄도 모르는 수많은 인생들이 죄의 바다에서 허우적대고 있지만 아무도 구조하려는 사람이 보이질 않습니다. 구조선이 되어야할 교회 역시 자신들의 성을 높이 쌓는 데만 열중하고 있습니다. 구원이라는 안주의 울타리에서 죽어가는 자들을 외면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주님께서 2014년 8월 1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88-2 번지 서울영동교회에 오신다면 무엇을 말씀하실까요?
주님은 돈 벌기에 열중인 상인들을 성전에서 내치셨습니다.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다고 책망하십니다. 예루살렘의 멸망의 결정적인 원인이 종교의 타락이라고 보고 계신 것이죠. 지금으로 말하면 개혁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종교의 일탈은 정치적 부패를 양산하게 되고 정의가 사라진 사회는 도덕이 무너지게 됩니다. 자신들의 소견에 옳은 데로 행하는 시대가 된 것이죠.
주님은 무너진 성전을 다시 세우는 일이 바로 기도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이사야 56:7절 말씀을 인용하십니다. 기도가 무너진 성벽을 다시 세웁니다. 교회 개혁의 시작은 기도를 회복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느헤미야가 훼파된 예루살렘 성을 생각하며 눈물 흘리며 하나님께 나아갔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가 이방 땅 한 복판에서 금식하며 기도하였을 때, 길이 열렸습니다. 기도는 무너진 성전을 다시 세우는 능력입니다. 오늘도 기도하는 자리로 나아가 무너진 성벽을 세우는 일에 최선을 다하기를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