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7월 29일 화요일
누가복음 19:1-10
“또 다른 부자 삭개오”
관원이었던 부자가 예수님을 찾아왔다.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그는 고상한 질문을 가지고 있었다. 계명을 지킬 것을 권고하셨다. 그의 대답은 “어릴 때부터 다 지켰습니다.” 자신 있게 대답하였다. 이런 그에게 주님께서는 한 가지 부족한 것을 지적하신다. 네 재산을 모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고 하셨다. 일부를 말씀하시지 않았다. 다 팔아서 나눠주라고 말씀하셨다. 그 사람이 큰 부자이므로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였다고 했다.
오늘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굳게 결심하고 올라가는 도중에,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셨다.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었다. 세리장이고 부자였다.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였으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었다.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달려갔다고 했다. 지나가시는 예수님을 얼굴이라도 한 번 보려는 마음이었다. 길 옆에 있는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갔다. 그는 주저하지 않았다. 그의 이러한 적극적인 행동은 재산을 증식하는 일을 할 때뿐만 아니라 포기할 때에도 똑같이 나타난다.
예수께서 그곳에 이르사 쳐다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이르사’ 주님의 오늘의 목적지는 잃어버린 양 삭개오의 집이었다. 그를 만나려고 여리고를 지나가신 것이다.
처음 만난 자신의 이름을 부르셨다. 자신을 이미 알고 있으셨다. 자신의 내면에 고민하고 있는 아픔을 만져주셨다. 주님께서 그의 이름을 부르기 전까지 그는 모든 사람의 손가락질을 받는 자였다. 7절 “뭇 사람이 보고 수근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라 들어갔도다.” 이 한 절에 그의 이력이 모두 들어있다. 그는 모든 사람이 인정하는 죄인이었다.
그러나 주님께서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자신의 인생의 주인이 바뀌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는 이 한마디에 그의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었다. 그는 급히 내려왔다. 즐거워하였다. 즉시 주님을 자신의 집으로 영접하였다. 예수님께서 그의 집에 들어오자 주인이 바뀌었다. 그는 즉시 하인이 되었다. 주인께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도 전이었다.
“삭개오가 서서 주님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습니다.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습니다.” 그의 고백대로라면 모든 재산의 포기를 의미하는 것이다.
부자관원은 예수님께 당당히 찾아올 수 있었다. 율법대로 살아온 자였다. 삭개오는 감히 만날 생각은 엄두도 내지 못하였다. 예수님을 먼발치에서나 보고자 했다. 네 배로 갚겠다는 말은 율법에 기초한 것이다. 그도 율법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율법대로 살 수 없었던 자였다.
그런 그를 주님께서 찾아오셨고 만나주셨고 그의 주인이 되어주셨다. 그를 향해 재산을 팔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의 인생의 주인 되시자 그의 행동이 변했다. 주님께서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예수님이 主되심을 알게 된 것이다.
나의 이름을 부르신다. 오늘도 주님께서 길우야! 내려오라고 말씀하신다.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에 삭개오를 노래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여리고 성 세리장 죄인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친구가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사랑이 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