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9:35-10:4)
요즘 매일 묵상하고 고민하면서...
‘정함’이 없이, 하루는 이쪽, 하루는 저쪽 하는 것이 있습니다.
신임교수 한명을 뽑아야 할 상황이 곧 올 것 같은데,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습니다(37).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주소서(38)’가 최근 몇 년간의 기도제목이었습니다.
실제 기도응답이 있어서, 좋은 연구원, 대학원생 제자들을 뽑아서 오랫동안 같이 하고 있습니다. 감사할 뿐입니다.
그런데, 임상교수 한명을 더 뽑아야 하는데,
후보자 한명은 ‘참여의 욕구’가 강하고, 또 한 후보자는 ‘개별화 욕구’가 강합니다.
많은 면에서 대별이 되니, 수동성과 능동성, 순종성과 개성, 이타심과 이기심, 이해력과 창의력, 착함과 까칠함... 그 둘의 조합이 딱 좋은데, 그러질 못합니다. 더구나 둘 다 믿음이 없으니, 선택의 기준이 모호합니다. 나에게 잘 하는지 여부는 전혀 중요치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12제자를 세우십니다. 하나같이 찌질해 보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합당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제자로 세우신 것은 그들의 능력때문이 아니라 ‘나를 따르라’의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오히려 제자로서 필요한 능력은 예수님이 직접 주신 ‘권능(1)’이었습니다.
내가 줄 수 있는 ‘권능’이 무엇이 있을까? 내가 채워줄 수 없는 것을 가진 자, 그리고 비록 지금은 없지만, 나와 함께 하면서 채워질 가능성이 있는 자.. 그런 자를 ‘제자’로 부르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약간은 ‘감’이 잡히는데... 결국은, 나의 문제인가 봅니다. 내가 나를 객관적으로 볼 줄 알아야 합니다. 무엇을 주고 무엇을 줄 수 없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선은 가르치고, 전파하며, 고치는 과정을 밟아야 할까 봅니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주님도 저를 ‘제자’ 삼으셨는데...
무슨 능력이 필요하겠습니까? 모든 것을 주님으로부터 새로 얻었는데 ...
적용) 선택의 과정에서 상처받을 수 있는데, 있는 그대로 제자를 사랑하고 존중하겠습니다. 무엇이 필요한지도 먼저 이야기해 주고 최소한 준비하고 노력할 수 있는 시간들을 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