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오후,
같이 사진하는 회원의 사진전 오프닝이 있었습니다.
오프닝에 참석한 지방 회원이 몇몇이 가을 그룹전시를 계획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도 참여하게 해달라고 한 회원에게 졸랐나봅니다.
그 회원은 마지못해 그러라고 결정을 해주었다고 합니다.
지난 봄 부터 6명의 회원이 시월에 사진전을 계획하고
몇 번의 모임을 갖고 준비를 해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결론으로 달려야할 즈음에 신규 참여라니 좀 어이가 없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 마태복음 9장11절
오늘 본문은 예수께서 마태를 부르시고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신 것과
그의 제자들이 금식하지 않은 것에 대하여 유대인들이 반발한 장면입니다.
바리새인들은 마태와 친구들을 세리와 죄인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실정법에 의한 죄수들은 아니었으나 유대 사회의
도덕규범과 의식법상 죄인으로서 천시 받는 대상이었음을 말해줍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예수님과 제자들의 행동이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기존 제도와 체제, 가치관에 손상을 가져 온다고 생각했습니다.
바리새인들처럼 사람을 구별하고 천시하는 일, 그것이 마음에 팽배해 있습니다.
적자투성이의 사무실을 정리하고 나니 달리 할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택한 것이 지질한 환경의 허드렛일을 하는 일터입니다.
하는 일이 그러니 함께 일하는 분들의 학력, 외모가 좋을 수가 없습니다.
유독 외모를 따지고 고학력 앞에 주눅이 드는 자신이
이런 분들을 차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러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마음속으로 무시하고
천시하는 악행을 반복하면서 매일 그 분들을 세리와 죄인이라 부르는
바리새인의 모습이 되어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가을에 있을 사진전은 내가 참여를 포기하는 것으로 제안을 했습니다.
늘 6인전의 형태를 취했는데 7인전은 이상하다는 이유지만
나름의 문제는 참가경비 마련이 힘들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실상의 내면적인 이유는
다소 부족한 회원들과 전시를 같이 하면 격이 떨어진다는 생각과
봄부터 준비해왔다는 초기 전시기획의 기득권을 내세우며
지방회원의 참여를 반대하며 길을 막아서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이러는 내 자신의 모습도 별 잘난 것 없고
실력도 쥐뿔인 것을 압니다만
알량한 자존심이 차별을 천시하는 마음을 불러옵니다.
이런 내 모습을 주님이 보시면 뭐라고 하실까요?
"목자라는 자가 그렇게도 사랑이 없냐?"하실까요?
"너도 별 잘난 것 없다." 하실까요?
현실 앞에 솔직해지길 원합니다.
내 실체를 바로 보게 되길 원합니다.
이 흉악한 죄인의 교만을 없애주시고
사람을 무시하고 차별하지 않고
사랑하고 존중하는 마음만 허락해주시길 기도합니다.
>>>> 비 그친 후 구름사이로 비치는 햇살을 담은 풍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