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9:9-17
마태복음의 저자 마태는
오늘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는 것도 아니고
연극 속에 한 등장인물로 소개합니다.
저도 그렇게 해보았습니다.
어제도 미술치료하느라 미술실에 앉아 학생들을 기다리고,
시간 맞춰 안올까봐 내 시간이 손해볼까봐
미리 연락하고 또 확인하고
그런데 예수님이 지나가시다가 “나를 따르라”하십니다.
세관에 앉아있으니 돈 받을 일이 엄청 많을텐데
일어나 따릅니다.
저는 어떻게 따르지요. 주님
돈을 버린 마태처럼 제가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학생들 치료를 거부하고 거리로 나가 전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에서 부당한 대우를 해도,
오늘 한 타임 더 학생들에게 치료를 하며
예수님을 전하는 일이 “일어나 따르라”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생각할수록, 말씀을 깊이 보면 볼수록
학교에서 저한테 부당하게 한 것은 없습니다.
그럴 수 있는 일이었고, 제가 당해도 싼 일이었습니다.
또한 바리새인들을 싹 무시하지 않고,
일일이 대답하시는 예수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에수님의 방법이 너무 대단하고 예술적이고 창조적이어서
감탄에 감탄을 하다가 기도하는 것을 잊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지금이라도 돈을 주시면
저는 바로 큐티 안할 사람이라는 것을
오늘 새벽에 또 인정합니다.
목장에서도 시간을 돈으로 따질 것 같습니다.
거기서 왜 말도 안되는 말을 듣고 있으며,
시간이 돈인데 왜 들은 말 또 듣고,
이게 집단치료로 따지면 돈이 얼마냐고
일단 목장할때는 그런 생각이 안드는 것이 참 또하나의 기적입니다.
하루 하루 말씀이 없었다면, 그 아까운 시간에 공부를 하고
집안을 깨끗이 치우고, 금전출납부를 쓰고, 핸드북을 정리하고
정부의 돈되는 치료사업에 여기 기웃, 저기 기웃하고 있을 것입니다.
제가 90프로는 돈을 내려놓은 것 같아..라고 생각한 것은
거짓입니다.
그런데 새 포도주가 저이고
새 부대가 우리들 교회 같이 생각됩니다.
이것도 기적입니다.
저는 이렇게 말씀 볼 때마다 기적을 체험합니다.
헐..
그러면서도 어제 다들 식사를 하고 이를 닦는 교사들과 아이들을 보면서
식대를 아껴쓰라 했으니 학교에서 주는 점심을 먹어야지 하고 기다렸는데
주방에 가서 냉장고를 뒤져도 한 그릇 안남아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멍했습니다..
저 어떻하죠. 주님!
화는 안났어요. 근데 먹을 것 한그릇, 돈 한푼에 움직여지는 제가
싫지는 않고, 귀엽고 이해가 됩니다.
마태처럼 벌떡 일어나 따라갈 적용만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어제 시험 볼 날짜가 나왔는데 9월 말주 토요일이랍니다.
디데이로 따지며 공부하고, 공부하다가도 “일어나 따르라”하시면
돈 세는 것도 마다하고 따를 준비를 하겠습니다.
주님의 일을 1번으로 삼기 위하여
큐티나눔에 올리고,
내일 마감인 큐티인 9월 집필 에스라 나눔을 보내고,
몇번이라도 수정받을 것은 받고
수요예배에 안내와 말씀듣기 위하여 몸을 아끼겠습니다.
오늘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그 한 분의 치료가 있는데
하나님이 그 자리에 계신 것처럼,
목사님께서 씨씨티비로 보고 계신 것처럼 치료해보겠습니다.
떨리고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마태가 자기를 연극 속에 그저 한 인물로 기록한 것처럼
저도 저기 돈만 좋아하는 가짜 치료사가 있었는데..
이러며 치료 시간에 저를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