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9:9
누구랑 어울리는가, 만 을 보고서도 그 사람의 가치가 매겨지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저는 요새 청계천 저작거리에 가끔 들락거리면서 상인들을
만날 뿐 거의 은둔 상태를 살고 있습니다. 자영업을 하다 보니 내 필요가 있지
않으면 열흘이고 한 달이고 사람들을 만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점점 더
-
고립되어 가는 것 같아 요새 같으면 다시 직장 생활을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습니다. 어디든 꼭 있어야 할 사람이 된다면 살아갈 힘이 생기고 보람을
느낄 텐데 소통 부재는 내 존재감을 확인할 수 없어서 움츠러지는 것 아닐까,
그 때나 지금이나 세관은 부와 권력의 장소이면서 조롱과 비난의 직업인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마태를 부르셨습니다. 마태를 콜-링 하는 본문을 읽을 때
마다 저는 제 동생이 생각이 납니다. 동생은 국세청 25년 차 맞벌이 부부로 3년
전에 겨우 24평 아파트를 장만할 만큼 정직하고 검소합니다. 제가 사업을 하면서도
단 한 번도 일과 관련해서 청탁이나 의논 자체를 안했던 것은 제 믿음 때문이
아니고 순전히 청렴한 제 동생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일이 호락호락하지
않다가도 동생을 보면 다시금 옷깃을 여미게 된답니다. 후~저는 언제나 형 만 한
아우 없다는 소리를 듣게 되려는 지요. 예수님께서 죄인들의 소굴에 들어가 먹고
마셨다는 것은 그들을 인정했다는 뜻이고 그들의 친구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장소는 물론 사람을 가리지 않으셨고 어떤 장소든, 어떤 사람이든
예수님이 들어오시면 정결해졌고 거룩해졌습니다. 죄에서 떠났고 매인데서
해방되었습니다. 의인이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우리 모두는 죄인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요한의 제자들은 투철하게 금식 전통을 지켰습니다.
귀한 습관이지만 그들은 이미 새 시대가 도래 한 것을 몰랐습니다.
이제 세례 요한이 오시라고 했던 그 메시아, 예수님이 오셨고 혼인 잔치가
시작되었으니 제사가 아닌 주의 은혜로 돌아와 주님과 함께 기뻐하는 것이
최고의 환대가 아니겠는가?
마태를 제잘 부르심(9-13)
a.마태를 부르심:9
b.마태가 예수를 식탁으로 초청함:10
c.예수의 대답:2-13
d.바리새인의 도전:11
e.예수의 대답:12-13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14-17)
a.금식에 대한 질문:14
b.예수의 대답:15
c.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16-17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지 않은 것 같이 새 포도주는 새 포도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 되느니라(17)“ 제사보다 긍휼을 원하시는 주님, 복음이
임하면 어떤 식으로든 파장이 일어야 하는데 제가 대부분 타협하기 때문에
낫-띵 인 것을 고백합니다. 축제 때 금식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고
주께서 열어 주신 새 시대에 합당한 삶을 힘써 실행하는 공동체가 되게 하옵소서.
2014.7.22.tue.헤세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