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세요 여보세요 배가 아파요
배 아프고 열이 나니 어떡할까요
어느 어느 병원에 가야 할까요
여보세요 여보세요 나는 의사요
배 아프고 열이 나면 빨리 오세요
여기는 소아과 병원입니다"
'병원놀이'라는 동요의 가사입니다.
아이를 키워 본 사람이라면 유치원 다니는 아이들이
부르는 이 동요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 마태복음9장2절
주님께서 가버나움에 도착하시자 사람들이
침상에 누운 중풍 병자를 데리고 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를 고쳐주십니다.
중풍 병자가 고침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중풍병자 자신의 믿음이었기도 하지만
그의 친구들의 중보적 신앙이 축복의 기회를 만들 수 있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중고등 학교 때까지 교회 생활하다가 세속에 빠져버린 나는
많은 시간을 세상과 벗하며 죄에 찌들어 살았습니다.
매일 마셔대는 술로 인해 아내는 우울증에 시달리고
아이들의 양육에 지장이 있어도 그것이 병적이고 죄인 것을 몰랐습니다.
그저 나만 편하고 즐거우면 되는 이기적인 삶이었습니다.
평소에는 그런 방탕한 생활을 하면서
주일에는 말쑥이 옷 차려입고 거룩하게 예배 참석하니
남들 보기에는 신실하고 금술 좋은 부부 같았지만 내면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우울증으로 고생하는 아내가 자꾸 몸이 말라가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할 뿐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나의 수년전은 영적 중풍병자의 생활이었습니다.
하지만 누구에도 내 아픔을 말할 수도 없었고 누구도 내 병명을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사람들이 중풍 병자를 침상채로 주님께 데려옵니다.
아마 중풍 병자가 자신의 병을 주변에 얘기하고
주님께 데리고 나가 병 고침을 받게 해달라며 도움을 청했을 것입니다.
부끄러움 없이 자신의 아픔을 고할 수 있는 환경,
주께 가면 고침을 받으리라는 믿음이 도움을 청할 수 있게 했을 것입니다.
또 이를 불쌍히 여긴 주변 사람들의 믿음이 함께하여 병자를 구원에 길에 있게 합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내 아픔을 마음 편히 얘기할 수 있고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우리들 목장을 떠올렸습니다.
중풍 병자와 함께한 사람들의 공동체, 이곳이 남이 나를 위하여,
내가 남을 위하여 서로 기도해주는 우리목장이 아닐까요?
오늘도 나는 목장에서 아픔을 나눕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내가 아파요~"

>>>> 아파트 뒷편의 작은 습지 풍경입니다.(Olympus E-P3, M.Zuiko 12-50m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