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7월 21일 월요일
누가복음 17:1-10
“용서는 마땅히 해야 할 일”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극단적인 선택을 요구하신다. 나사로가 될 것인가? 부자의 삶을 선택할 것인가? 오늘은 실족의 문제와 용서를 동시에 다루고 계신다. 부자의 실족은 나사로의 고통을 외면한 것이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돌아보지 않았다. 부자의 고통을 통해서 우리가 가지 말아야할 일 순위가 무엇인지를 알려주신다. 그러하기에 실족이라는 것은 순간의 선택이 돌이킬 수 없는 영원을 결정하는 重且大(중차대)한 일이다.
그러므로 용서를 구하는 자에게 끝없는 용서를 베풀 것을 요청하고 계신다. 내가 그들을 용서 했고 그들을 찾고 있기에 너희들은 당연히 나를 대신해서 그들을 용납하여야한다. 그에 앞서 저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경고하는 것 또한 잊지 말아야 한다. 당연히 너희들이 해야 할 몫이다.
용서의 문제는 개인 간의 화해의 차원을 넘어선 하나님과의 관계의 문제이다. 누가가 쓴 편지의 최초의 수신자가 데오빌로 각하였다. 평민이 아니었다. 그는 귀족이었고 상당한 지위를 가진 자였다. 그가 이 말씀을 들을 때,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그는 부자와 같이 베풀 수 있는 자였고 용서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이 말씀은 일차적으로 제자들을 향하고 있지만 동시에 데오빌로에게도 주신 말씀이다. 너는 부자의 자리에 있는 사람이다. 그곳에서 내려와야만 한다. 너는 일개 무익한 종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 있다. 베풀고 용서하고 또 용서해서 잃은 자를 찾아야한다. 그래야만 나사로의 길을 갈 수 있을 것이다.
용서는 행위 이전에 믿음의 문제라는 점이다. 용서란 나의 의를 가지고 집행하는 일이 아니다. 겨자씨만한 믿음의 길이라는 것이다. 나를 용서하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만 하루에 일곱 번씩 회개하는 자를 용서할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결국 모든 일을 마치고 돌아온 종이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 뿐입니다.’라는 고백처럼 우리의 용서가 필요한 곳에 사랑으로 나아가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사랑을 먼저 받은 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인 것이다.
주님이 말씀하신다.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를 실족하게 할진대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누가복음 17:2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누가복음 17:6
바다에 빠질 것인가 아니면 바다에 심길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 바로 겨자씨 믿음의 문제요 용서임을 기억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 응봉산 개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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