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7월 19일 토요일
누가복음 16:19-31
“부자와 나사로”
저는 참 이기적인 사람입니다. 살기는 부자처럼 살고 죽기는 나사로처럼 죽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극단적인 대조를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과 재물은 겸하여 섬길 수 없다. 분명한 목소리로 거듭 말씀하셨지만 제 삶을 돌아보면 언제나 마음은 재물을 향하여 있습니다. 날마다 말씀을 묵상한다고는 하지만 하나님 나라를 향하여 나아가기 보다는 제 발걸음은 여전히 세상을 향하여 걸어가고 있습니다.
3주전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졌습니다. 남산타워까지 올라간 것은 좋았는데 내려오면서 인도와 차도 경계선 턱을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보기 좋게 넘어진 것입니다. 걷는데 불편한 것보다, 일에 대한 부담 때문에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일과 치료를 병행했습니다. 다친 날이 주일이었습니다. 운동을 핑계로 세상 즐거움에 취해 남산을 오른 것입니다. 이런 나를 향해 아내는 경고의 메시지를 여러 번 날렸지만, 무시하고 세상을 향하여 달리다가 넘어진 것입니다.
3주간의 시간이 흐르자 이제 상처도 아물고 걷는 데는 불편함이 없지만 구부릴 때 아직도 통증이 있습니다. 제대로 사용하지 않은 관절이 굳어버린 것입니다. 작은 상처로 인해 온 몸이 영향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영적생활도 이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작은 것을 무시하거나 외면할 때, 그 결과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기도를 등한시 하거나 말씀 묵상을 잊어버릴 때, 영적근육도 힘을 잃는다는 것입니다. 마땅히 해야 할일을 무관심으로 지나쳐버리거나 감사를 잃어버린다는 것입니다. 내게 주어진 모든 것들이 주님으로부터 온 것임에도 무뎌진 영적인 눈은 자신의 능력으로 누리는 것으로 착각하게 됩니다. 오늘 등장하는 부자처럼 이웃에 대해 눈이 멀어버린다는 것입니다.
나사로는 온 몸이 헌데 투성이로 부자의 대문 앞에 버려진 자였습니다. 3주간 동안 상처를 치료하면서 나사로의 괴로움을 짐작해봅니다. 저는 치료하면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사로는 평생을 고통 중에 살았습니다. 한마디로 비참함 그 자체였습니다.
부자의 치명적인 실수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물이 하나님 것임을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가 조금만 마음을 열고 주위를 살펴보았다면 나사로를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재물은 즐기고 쌓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흘려보내는 복의 통로임을 알지 못했습니다. 부자는 고통 중에 아브라함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그도 육적으로는 아브라함의 자손이었습니다. 바로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있다고 믿는 자들이었습니다.
“이 땅에서의 삶의 결과가 내세에 미치는 영향은 너무도 치명적이다.”는 것을 거듭해서 말씀하십니다. 한번 가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것임을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배웁니다. 기회는 한 번 뿐이다. 오늘이라는 시간은 딱 한번 뿐 임을 마음에 새깁니다. 성도의 삶은 오늘을 투자해 영원을 추수하는 길임을 기억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 소양강 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