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8:1-13
3절 즉시 그의 나병이 깨끗하여진지라
13절 그 즉시 하인이 나으니라
새벽에 큐티하며 감동이 너무 진해서
무엇을 적용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제 죄가 너무나 밝히 보여, 저를 깨끗케 해주시고
낫게 해주신 주님께, 죄송하고 감사하다면
삶으로 적용해야 합니다.
제 주위에 항상 아프고 괴로운 사람이 참 많습니다.
목장 식구들도, 그 가정 내에 식구들도,
미술치료사이기에 돈을 내고 고치러 오는 사람도 있고,
고통의 땅끝마을이라고 할 수 있는 북한을 이탈해 온 학생들도
자신들이 돈은 안내지만, 3,4개월을 기다려 치료를 받습니다.
주님 제가 무슨 닥터에요? 기도할 때마다 두려워서 울었고,
예수님이 치료해달라고 기도하면서도
제가 하려고 안간힘을 썼습니다.
치료에 임할 때마다 두렵고,
제가 더 망치고 있다는 느낌 때문에 괴로웠습니다.
오늘부터 새로 시작되는 목사님의 마태복음 2번째 저서인
“새 말씀, 새 부대, 새 노래”속에
헨리 나우엔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나우엔은 보살핌과 치유는 서로 다른 말이라고 합니다. 치유는 변화를 뜻합니다. 의사와 변호사와 사회복지사는 전문 지식과 기술로 사람들에게 변화를 주려고 합니다. 그리고 사례를 받습니다. 그래서 치유는 바람직한 것이라도 그것이 보살핌에서 나온 것이 아닐 때는 조작적이고 파괴적인 것으로 바뀔 수 있다고 합니다.]
목사님께서는
[보살핌은 같이 울어 주고, 같이 느끼고, 측은히 여기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죽을 수밖에 없는 100% 죄인임을 인정하고, 보살핌이 우리의 첫 번째 관심이 될 때 생각지 못한 치유를 선물로 받을 수 있습니다.......대단한 학식이나 가르침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서로 보살필 때 각자에게 치유가 일어납니다.]
라고 하셨습니다.
제게 아픈 아들이 있습니다.
34살 된 아들은 고양이가 없으면 외롭고,
고양이털이 자신의 양복에 묻어도 털지 않습니다.
좁은 방에 고양이 똥 냄새가 이 더운 여름에
진동을 하는데도 그 냄새에 역겨워하지 않습니다.
예수님 믿는 가족이 두 명이나 있는데도
제 아들은 외롭습니다.
자기편이 있어야 한다고 고양이 식구를 들였습니다.
제가 아들을 외롭게, 괴롭게 했습니다.
확실히 저 때문입니다.
제가 지금까지는 억지로 적용했다면
이제는 좀 다르게 적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작은 것 한가지씩..
오늘 말씀에 힘입어
주님께 제 아들이 괴롭다고 고하기만 하면 됩니다.
여태 제가 제일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짐승이랑
살아야 하는 것이 괴로웠던 실상이
아들이 더 괴롭다고 온 몸으로 표현하는 것을
머리로가 아니고 가슴으로 깨달아지는 새벽입니다.
아버지 하나님!
예배드려야 하는 주일에 결혼이벤트 회사 영업부장을 하며
괴롭다고 표현하는,
세 식구가 어쩌다 밥을 먹을 때도 핸폰을 보며 밥을 먹으며
외롭다고 표현하는,
제 아들이 아픕니다.
종도 아니고 아들이 아픈데
저는 제 고통만 보고 있었습니다.
"너는 나의 아들이야, 너와 함께 있으니 좋구나. 너를 생각하고 너를 위해 기도할게. 말을 안해도 괜찮아, 나는 너와 함께 있어".
목사님께서 가르쳐주신대로 전달할 수 있도록
삶에서 적용하겠습니다.
아들의 괴로움을 주님께 고하오니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말씀해 주시옵소서.
제가 치료하는 분들도,
몸과 마음을 어루만질 때,
내게 있는 상처와 아픔이 극복되면서
치유가 일어난다고 하셨사오니
사례를 받는 것을 미안해 하면서 보살피겠습니다.
주님! 목장에서도 8분이 다 아프고,
주님이 사랑하시는 그 한 분이 아픕니다.
디스크로 잘 앉아있을 수 없는 딸이 아픕니다.
고하오니 치유하여 주시옵소서.
저와 아들과 딸,
저 때문에 제 주위에 있는 분들을 치유해주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