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까지
작성자명 [박종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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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8.03.22
2008-03-22(토) 누가복음 23:44-56 ‘거기까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이루어지던 순간
해도 잠시 빛을 잃고 성자의 죽음을 애도했습니다.
백부장이 가장 먼저 망자를 위로했고 구경하던 무리도 가슴을 쳤습니다.
생전에 가르침을 따르며 예수님을 섬기던 여인들도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예수님의 시신을 거두어 장례를 치른 사람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당시의 기득권층이었던 요셉과 본문에는 나오지 않는 니고데모였습니다.
생전에 가르침을 따르던 제자들이 치러야할
장례식을 주관한 사람으로 나오는 요셉에 대해
성경은 선하고 의로운 사람이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그들의 선행과 정의로운 행동은 하나님의 나라 생명책에 영존할 것입니다.
고난의 순간에 슬며시 자취를 감춘 제자들과 비교하면
그들의 행동은 세상의 어떤 찬사로도 부족할 것입니다.
요즘 젊은이들의 유행어로 ‘킹왕짱’입니다.
모든 사람의 역할모델로 손색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역할 모델로 삼고
그들을 닮으려 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인생좌표 설정에서 역할모델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않지만
불행히도 우리 문화는 사람의 장점을 부각시켜 역할모델로 키우기보다는
단점을 지적해 역할모델을 오히려 제거시키는 벌점주의 방식이 보편화 되어있다
어떤 교수의 이런 지적이 아니더라도 그들에게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공동체 양육의 추억...
예수님과 함께 한 양육의 추억이 없었기에
그들의 역할은 거기까지였습니다.
부자에, 선하고 정의로운 성품을 타고난 탓에
성경에 선하고 의로운 사람으로 기록되었지만
정작 부활한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비겁하고 나약한 기회주의자, 실족했던 제자들입니다.
그래서 매일 주님을 외면하고 부인하고
심지어 서푼어치도 안 되는 양심에 얹어 팔기까지 하는
나 같은 죄인도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비겁하고 악으로 가득한 내 자아 때문에
아직도 내려놓지 못하는 세상의 귀한 것들이 많고
예수님 달리신 십자가 앞에 담대히 나서지 못하는 두려움이 있으며
예수님께 드릴 비싼 향료와 쓰지 않은 빈 무덤도 내겐 없지만
돌이키고 거듭나면 다시 써주실 것을 믿기에
연약한 내 믿음에 좌절하지 않고
주님 앞에 선하고 의로운 사람 되기를 빌어봅니다.
멀리 도망갔지만 훗날 귀히 쓰임 받은 제자들처럼
사는 동안 함께 한 추억 하나로
주님께 부름 받아 용서 받고 쓰임 받을 수 있도록
이 땅의 남은 연한을
주님과 함께 하는 양육에 매여 있기를 원합니다.
돌이키고 일어서 주님 다시 만날 그 날에
귀히 쓰임받기보다
주님의 원대로
가장 낮은 곳에서 편하게 쓰임 받는 사람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