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본문은 마태복음 7장 1-14절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남을 비판하는 그대로 비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십니다.
다른 사람의 작은 죄는 발견하나 자신의 큰 죄는 찾지 못하는 위선을 멈추라고 하십니다.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이시므로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는 것이 곧 율법이고 선지자임을 말씀하심으로
결론을 내리십니다.
어렸을 적에 얻지 못할 것은 구하지 말라고 배웠습니다.
“달에게 소원을 빌지 말라.” 저는 제가 갖고 싶어 하는 것은 부모님의 능력 안에 있는
현실적인 것들이어야 하는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갖고 싶기는 한데 너무 비싼 것은 친구들 핑계를 대면 통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른 애들은 전부 갖고 있는데..” 라며 조르곤 했습니다.
엄마가 일을 하게 되고 수입이 늘자 저의 요구는 자연스럽게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정말 원했던 것은 부모님이 싸움을 그치는 것이었습니다.
두 분은 항상 서로에게 불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밤늦게 까지 다툼이 이어졌고 어느 쪽도 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제발 그들의 싸움을 멈추게 해 주세요“ 기도하고 또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의 다툼은 이혼을 하고 나서야 멈추었습니다.
최신 유행하는 신발이나 장난감과 같은 작은 것들을 받는 것은 제게는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원하는 것을 구하고 또 받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의 행복과 같은 제가 정말로 원했던 것은 정작 얻지 못했습니다.
커다란 대가를 치르고 나서야 부모님의 싸움은 중단되었지만 이미 가족의 틀은 깨어진 뒤였습니다.
그 뒤로 진지하게 무언가를 구하는 것을 멈추게 된 것 같습니다.
저는 대부분 무엇을 구하거나 원하는지를 분명하게 알지 못했습니다.
사과가 먹고 싶다고 구체적으로 말하지 못하고 그냥 배가 고프다고 에둘러 말하곤 했습니다.
무언가를 구하는 것은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찾는 것은 구체적이어야 하며 두드리려면 문이 있어야
합니다. 아마도 저는 회피했던 것 같고 이후 성적인 문제와 결혼과 아이들과 일에 있어서 혼란스러움을
겪었던 것 같습니다.
구체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하기 위해서는 이제까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버려야 했습니다.
제가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정말 찾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어느 문을 두드려야만 할까요? 이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결론에 이르도록 이끌어 준 것은 담임목사님과 우리들교회였습니다.
내 죄를 보기 위해서 집중하고 회개함으로써 저는 비로소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사랑과 기쁨과
평화를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 주님! 매일 당신의 눈으로 제 자신을 볼 수 있도록 하옵시며 깊이 회개하고
당신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