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아내와 아파트 단지 뒷산에 오르거나
집에서 가까운 산으로 산행을 합니다.
몇 일전 아내와 산을 오르는데
어느 부부가 뒤따라와서 앞질러 가는데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틀어놓고 있어 귀를 거슬리게 합니다.
나는 복잡함을 떠나 산에 왔으면 조용한 것을 즐기려고 온 것인데
산길에서 음악을 크게 틀어 놓으면 어쩌라는 거냐고 험담을 했습니다.
그런 나를 보고 아내는 당신의 남의 말 하는 그런 모습 때문에
같이 다니기가 싫다고 합니다.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 마태복음7장2절
오늘 예수께서는 비판과 타협에 대한 교훈을 하시고 계십니다.
1-5절은 잘못된 타인 비판을, 6절은 무절제한 타협을 지적하십니다.
성도는 먼저 자신에 대해서는 엄정한 자세로 근신하고 타인에 대해서는 관용을,
비판을 하더라도 위선적이 되지 말고 서로 권면하는 자세가 되어야 합니다.
사람을 비방하고 비판하는 것이 버릇의 기준을
나는 타인에게는 단호하게 하고 내게는 관대하게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전 직장에 재직 시 못되게 구는 상사들을 비판하며 술안줏감으로 삼아도
나는 선하게 부하직원을 대하므로 그들은 내 험담을 안 하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평소 잘못을 짜증스럽게 나무라며 작은 일도 지적해대는
내 행동에 대해 부하직원들은 뒤에서 얘기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역시 짜증스런 질책을 하는 내게
"그래서 부장님 별명이 놀부입니다."하는 부하직원의 한마디가 충격으로 다가 왔습니다.
우리는 남의 눈의 티는 잘 보는 것 같습니다.
남에게 묻은 겨는 유난히 거슬려 보입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험담을 하고 싶어 합니다.
목장이 개편되면서 부목자가 공석인체로 편성이 되었기에
목장모임에 대한 연락도, 목장인도도,
목장보고서도 목자인 내가 해야 했습니다.
목장모임 안내전화를 하니
'목자님이 웬일이세요?'하는 목원들의 반응이었습니다.
목장인도를 하며 메모하기 힘드니 나눔 내용을 스마트폰으로 녹음했는데
어제 보고서 작성을 위하여 녹음내용을 들어보니 내 실체가 훤히 보입니다.
이렇게 내가 모르는 나의 단점을 타인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을 때 정확히 보이는 것 같습니다.
이 일을 통해 내 기준만으로는 그릇된 판단을 하기 십상이라는 것을 깨달으며
평소 내가 목장 섬김에 소홀했다는 것과 목장을 인도하며
말하는 억양과 말버릇이 많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나는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타인의 시선엔 그렇지 않은 일들을 내가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 기준이 항상 옳지만은 않았다는 것입니다.
잘못된 나의 기준이 비판의 잣대가 되어 왔다는 것입니다.
우리 속담대로 하면 똥 묻은 개의 기준인 것입니다.
나부터 바로 되어야 하고 내 자신에 대한 바른 평가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도 남에 대해 그럴 수도 있다고 인정하지 못하고
잘못된 내 잣대를 적용하는 교만이 팽배한 자신을 회개합니다.
위선을 버리고 낮아진 자신이 되기를 원합니다.
잘못된 내 가치 기준을 주님의 기준으로 바꿔주시고
남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주시길 기도합니다.

공룡알 화석지 화성군 고정리의 여름(2014. 6. 28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