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7월 16일 수요일
누가복음 15:11-32
“사랑의 다른 말, 기다림 (1)”
찾을 때까지 찾아내기까지란 말을 바꾸면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말이다. 어제는 우리를 사랑하시되 포기하실 수 없는 사랑을 말씀하셨다. 오늘은 사랑의 다른 말 기다림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었다. 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아버지가 죽으면 자신에게 돌아올 분깃을 달라고 하였다. 재산상속을 요청한 것이다. 이 요청에 망설임 없이 재산을 두 아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 후, 며칠이 못되었다. 둘째 아들이 상속받은 재산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했다. 마침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었다. 糊口之策(호구지책)으로 선택한 직업이 농장에서 돼지를 기르는 일이었다.
유대인에게 있어서 돼지는 불결한 짐승이었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둘째 아들은 더 이상 내려갈 수 없는 밑바닥으로 전락했음을 보여준다. 극심한 가뭄은 돼지들이 먹는 쥐엄 열매조차 구하기 어려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다. 그제서야 아버지의 집이 생각이 났다.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스스로 돌이키게 된다. 이제는 아들로서가 아니라 품꾼으로서 귀향을 선택한다.
막다른 골목에서 하늘을 본 자는 복되다.
거리가 멀었다고 했다. 고개를 떨구고 야윈 얼굴로 다가오는 집나갔던 아들이었다. 아버지의 유산을 미리 땅겨달라던 철부지 아들이었다. 남루한 옷을 입고 고개도 못 든 채 저만치서 오고 있는 둘째 아들을 한 눈에 알아보았다. 한걸음에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다. 자신의 생각과는 달리 환대하는 아버지 앞에서, 둘째 아들은 자신이 하늘과 아버지께 죄인 됨을 고백한다. 품꾼의 하나로 받아달라고 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게 하였다. 그냥 옷이 아니라 제일 좋은 옷이었다.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게 하였다. 신발조차 신지 못하고 돌아온 아들을 위해서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며 잔치를 명한다.
이 아버지는 집나간 아들이 떠나간 동네어귀를 항상 바라보고 있었다.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鶴首苦待(학수고대)라는 말을 이럴 때 쓴다하겠다. 그러기에 거리가 먼데도 불구하고 변해도 너무 변한 아들을 한 눈에 알아보았다. 이 아버지가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시다.
누가복음 15:17 이에 스스로 돌이켜
주님은 인격적이신 분이시다. 오늘도 돌들에게 명하여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드실 수 있으신 분이시다. 형의 말대로 우리는 많은 재산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버린 자였다. 둘째 아들 같은 우리들을 기다리고 계신다. 강제적으로 부르시지 않는다. 명령하시지 않는다. 다만 문을 두드리고 계신다. 스스로 돌이킬 때까지 오늘도 주님은 기다리신다.
하나님 사랑의 또 다른 말, 기다림이다. 기다리시되 끝까지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바로 은혜이다.
요한계시록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1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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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정원에 피어난 수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