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처음 본 영화가
그 때 당시의 획기적인 총천연색 시네마스코프로 제작한 '성춘향'이었습니다.
어린 아이에 성인 영화가 무슨 재미가 있었겠습니까만
나중에 옥에 갇힌 춘향이가 절개를 지키다가 암행어사가 된 이몽룡을 만나는 대목은
어린 기억에도 잊히지 않는 장면이었습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 마태복음 6장24절
열등감이 많은 나는 내 소유로 남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나타내려 했습니다.
그래서 무엇이든지 내가 좋아하는 것은 최고급을 지향했습니다.
오디오에 관심 있을 때는 소위 명기라는 기기를 탐닉하면서
음을 시청하러 다녔고 결국 BW라는 스피커를 구입하고
아내의 싫은 소리를 잔뜩 들어야 했습니다.
그러다 오디오에 대한 취미는 내가 못 오를 나무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 포기하였습니다.
사진을 하면서는 잘 찍지도 못하면서
프로사진가들이 쓰는 핫셀브라드라는 카메라가 갖고 싶었습니다.
결국 어떻게 어떻게 해서 그 카메라를 소유하고 나서도
다른 카메라를 탐닉하면서 계속 카메라 바꿈질을 해댔습니다.
자전거를 배우면서는 고가의 자전거에 눈독을 들이며 부품을 교체해댔습니다.
프레임을 결국 원하는 티타늄으로 바꾸고 났을 때
허리 디스크가 생겨 한동안 자전거를 타지 못하게 되고
결국 자전거에 대한 관심은 멀어져 갔습니다.
분에 넘치는 도락을 즐기며 물건을 들이다 보니 남은 것은 빚뿐이었습니다.
빚에 허덕이다 보니 내가 아니라 돈이 주인 되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결국 미국발 세계경제위기로 더 어려워진 개인경제는
집을 매각하여 빚을 정리하는 것으로 마감 되었지만
아직도 물질욕은 가슴 한구석에서 가끔 나를 찔러댑니다.
오늘 본문을 보며 예수님은 '네 주인이 누구냐?' 하고 물으시는 것 같습니다.
물질은 춘향전에 나오는 변학도의 모습으로 꼬드기거나 혹은 강권으로 내게 다가옵니다.
그럴 때 마다 그 앞에서 항상 무너졌습니다.
내 주인은 오디오에서 카메라로 자전거가 되어졌습니다.
이렇게 지조 없이 주님을 무시하고 수시로 주인을 바꿔
여러 주인을 모시는 창기와 같은 내 모습을 주님을 어찌 보셨을까요?
결국 모든 것을 다 잃고 낮은 환경이 되어서야
하나님 한 분만을 주인으로 모시지 못했음이 후회 됩니다.
결국에는 다 허무해지는 것이 물질이고 소유하고 나면 허망해지는 것인데
그것을 알면서도 불에 달려드는 부나비 같은 삶을 살아온 것입니다.
아직도 마음 한편에 남은 물질의 찌꺼기가 있습니다.
고개를 들려는 그 욕망을 말씀으로 누르며
오직 주님이 내 전부가 되는 삶속에 주님만이 주인 되시길 기도합니다.
쇼핑몰의 메일이나 카메라 사이트의 공지 글은 읽지 않고 삭제하는 적용을 하겠습니다.

물질을 주인으로 두는 것은 구름을 #51922;듯 허망한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