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지로 진 십자가
작성자명 [박종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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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8.03.21
2008-03-21(금) 누가복음 23:26-43 ‘억지로 진 십자가’
어제 저녁, 포장마차로 찾아온 어떤 지체와 한 시간여 대화를 나눌 때에
그의 얼굴을 떠나지 않는 밝은 미소에 나까지 덩달아 기분이 좋았는데
정작 우리가 나눈 대화는 생활의 염려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전문 분야에서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으며 회사에 충성을 다하다가
이런 저런 사정에, 나이에서 오는 능력의 한계를 인정하고
회사를 나와 새 일을 준비하는 중이었는데, 그가 계획하고 있는 일에
나의 포장마차 경험에서 조언을 구하고자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작은 점포를 얻어, 자신의 특기인 요리를 생업으로 연결시킬 생각을 하면서도
포장마차를 할 수만 있다면 기꺼이 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 그를 보며
먹고 살기 위해 아무 생각 없이 시작했던 나의 5년 전이 생각났습니다.
그 때, 억지로 웃음 지으며 그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저 살기 위해서, 아내에게 미안하고 애들이 불쌍해서였지
내게 무슨 굳은 의지와 준비된 마음이 있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에서 일보러 왔다가
군중에 휩쓸려 가던 중 억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졌던 것처럼
나도 아무 생각 없이
나를 곁에 잡아두려는 채권자의 강권에 가까운 배려로
억지로 할 수밖에 없었던 일이 포장마차였습니다.
아내가 고개를 숙이고 있으니 나라도 고개를 들어 손님을 맞아야 했고
아내가 늘 울고 있으니 내가 아내 몫까지 웃어야 했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 억지로 한 일이 무슨 선한 구석이 있다고
시청률을 의식한 TV 다큐 프로에, 적당히 미화되어 소개되는 바람에
억지로 선한 사람, 불굴의 의지로 일어선 사람이 되어야 했습니다.
전철을 타면 사람들이 알아보고
식당 구석에서 라면이라도 먹고 있으면
내 사정을 알고 격려를 하여, 나를 당황하게 하는 사람이 꼭 있었습니다.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울 수 없어서 숨어 피우다가 담배를 끊게 되었고
말 한마디가 조심스럽고, 뱉으려던 침도 그냥 삼켜야 했습니다.
그러던 중, 억지로 받은 양육을 통해 변화하는 나를 느꼈고
이제 스스로 변하기를 소망하며, 내 믿음의 분량 대로
내가 질만한 십자가도 찾을 수 있게 되었지만
그 작은 십자가 하나 지기가 여전히 두렵습니다.
그런데 그 지체는 그 힘든 일을 자원하려 하다니...
집이 있어서 아둘람 굴로 숨어들지 않아도 되고
마음만 먹으면 외국으로 옮겨가는 회사를 따라
많은 사람이 동경하는 그 나라에 가서 편히 살 수도 있을 텐데
모든 걸 포기하고
가장 소박한,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아
포장마차의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고
가족을 위해 자원함으로 지려하는
힘든 생업의 십자가에 대한 그의 결단이 어디서 나왔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건 말씀 안에서 배운 겸손함과 양육으로 그의 성품이 된
하나님의 한량없는 은혜로 입은
의로움의 새 옷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구레네 사람 시몬은 억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졌지만
훗날 그의 아들 루포는, 바울에게 존경 받는 사람으로
그의 아내는 바울이 어머니로 모시는 사람으로 로마서에 등장합니다.
억지로 진 십자가도 은혜가 되지만
자원함의 십자가는 더 큰 은혜가 됨을 삶으로 깨닫게 해준
그 지체와 가족, 그리고 새로 시작할 생업 위에
성령의 지혜와 도우심이 함께 하여
옳다 인정함을 받는 인내의 열매가 실하게 맺히기를 빌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