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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7월 15일 화요일
누가복음 15:1-10
“찾을 때까지, 찾아내기까지”
모든 세리가 예수께 나아왔다. 당시 대표적인 죄인 취급 받던 자들이었다. 매국노라고 멸시 당하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왔다. 그들은 인생의 곤고함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피곤한 인생이었다. “이 세리 같은 놈”이 큰 욕이 될 정도로 주류사회에서 배척당하는 자들이었다. 민족으로부터 왕따 당하고 있던 자들이었다. 그런 자들과 식사를 한다는 것은 생각조차하기 어려운 시대였다. 그런데 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예수님을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누가복음 15:2
이 한마디에 당시 모든 시대상이 함축되어있다. 로마의 식민지하였다. 강제적으로 징수되는 세금과 불법이 난무하는 사회상이, 세리라는 직업 안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그들에게 말씀을 전하신다는 것 자체를 용납할 수 없었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었다. 이제 그들의 눈에는 ‘주’도 아니요, ‘선생’도 아닌 ‘이 사람’으로 불리어지고 있다. 도저히 사회통념상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고 있는 이 예수는 누구인가?
잃어버린 양을 찾으시는 분이시다. 잃어버린 드라크마를 찾으신다. 주님께서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기본은 포기란 단어는 없으시다. 찾을 때까지 찾는 분이시다. 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아내기까지 부지런히 찾으신다.
찾을 때까지, 찾아내기까지 일하고 계신 하나님의 지칠 줄 모르는 사랑을 만나다. 죄인 한 사람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아니었다. 단 죄인 한 사람의 회개에 천국이 들썩거린다. 다시 찾은 기쁨을 위해 일하신다.
잃어버린 양에 대한 관심이 이처럼 지대하시다. 오늘도 주님의 시선은 교회에 상처받고 교인들에게 배신당해서 유리하고 있는 영혼들을 향하고 계신다.
그러나 나는 등불을 켜지도 않았다. 쓸지도 않았다. 부지런하게 찾지도 않았다.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을 잃어버린 또 다른 잃어버린 양이다.
세리는 사람들의 눈에는 죄인으로 보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에는 모든 사람이 죄인이다. 하나님의 눈에는 동일하게 구원 받아야할 긍휼의 대상일 뿐이다. 바리새인도 서기관도 세리도 동등하게 부르신다. 세리들은 잃어버린 양이었다. 배척 받아야할 대상이 아니었다. 주님의 품은 잃어버린 양을 향해 열려있다. 주님께서 부르시고 계시는 대상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이기 때문이다. 죄인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은혜이다.

◆ 거미줄 바위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