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7월 13일 주일
마태복음 6:1-8
“은밀하게 하라”
오늘의 주제는 은밀하게 하라는 것이다. 구제도 은밀하게, 기도 역시 은밀하게 하라는 것이다. 은밀한 중에 보고 계시는 아버지께서 갚아 주신다는 약속의 말씀이시다. 구제를 할 때, 심지어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원칙을 세우신다. 어떻게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할 수 있을까? 이게 가능한 일일까?
이것은 구제를 받는 입장을 배려한 하나님의 사랑이시다. 또한 구제의 주체가 내가 아닌 하나님이심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내 것을 가지고 돕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것을 가지고 베푸는 전달자에 그쳐야한다. 그러므로 ‘생색’이란 단어는 구제와는 완전히 구별된 말이다. 받는 사람의 입장에 조금도 마음에 상처가 되지 않도록 주는 자도 받는 자도 모르게 구제하라는 말씀이다.
또한 구제를 받으시는 이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 잠언 19:17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관심을 가지고 계신 대상이 가난한 자였다. 이 땅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하나님의 마음이 머무는 곳이 가난한 자요 그를 돕는 자이다. 구제의 현장에 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 그리고 기꺼이 채무자가 되시겠다고 선언하신다. 여호와께 꾸어드리는 것이라는 다른 말은 하나님께 저축하는 것이다. 그리고 구제의 비밀은 채무자와 채권자 동일한 하나님이시라는 점이다. 우리들은 다만 복의 통로로 사용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상급을 주시는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이시다.
나의 기도생활을 돌아본다.
기도를 받으시는 이가 하나님이심을 잃어버릴 때가 간혹 있다. 통성으로 기도할 때이다. 기도에 빠져들다 보면 무엇을 구하였는지도 모른 채, 기도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한다. 회중기도를 할 때면 내가 기도를 잘하였는지 여부가 궁금하기도 하다. 이것은 제대로 된 기도가 아니다. 사람을 의식한 기도는 이미 그 생명력을 잃어버린 기도이다.
은밀한 중에 보고 계시는 하나님이심을 먼저 깨닫는 것이 기도의 출발이다. 나의 모든 것을 이미 알고 계신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기도의 시작이다. ‘지성이면 감천이란 말속에 이방인들의 기도의 특징이 들어있다. 자신의 정성과 노력에 따라 보상 받는다는 개념이다.
그러나 성도의 기도는 나의 필요를 이미 알고 계신다는 것을 전제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을 많이 하거나 부르짖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나의 필요가 하나님의 마음에 맞느냐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은밀하게’는 성도의 삶의 기준이다. 오늘도 두 눈 시퍼렇게 뜨고 보고 계시는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는 것이 ‘코람데오’ 신앙의 출발이다.

◆ 올림픽 공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