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작성자명 [박종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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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8.03.20
2008-03-20(목)누가복음 23:13-25
어제도 여전한 방식으로 목장 예배를 드렸고
예배의 시작은 어김없이 사도신경이었습니다.
그런데 신천지는, 사도신경에 사단의 음모가 숨어있기 때문에
사도신경을 외우는 교회는 실질적인 이단 이라 주장하고
우리나라 기독교계는 사도신경을 인정하지 않는 교회를 이단이라고 합니다.
저는 그 당시는 몰랐지만, 교계가 이단으로 분류한 교회를 다닌 적이 있고
결혼식도, 그 교회 목사님을 주례로 모시고 했습니다.
그 후 사업을 하면서 사업장이 옮겨질 때마다
가까운 곳으로 집을 옮기고 교회도 옮기는, 실용주의를 따라 살다보니
줄잡아 10 여 군데 이상의 교회를 다녔지만
그 교회가 어떤 교단 소속인지 알아보려 하지 않았고
나중에 알게 되어도 전혀 개의치 않았습니다.
우리들교회로 신앙의 본거지를 옮긴 후
사도신경이 예배 순서에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다가
나중에 사도신경이 채택되고 나서야 없었다는 것을 알았을 정도입니다.
처음에 없던 사도신경이 예배 순서에 들어간 건
이단 시비에 휘말리기 싫어서였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지금도, 사도신경이
내 믿음 생활의 본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내가 속한 신앙 공동체의 질서에 따를 뿐이고
말씀의 한 획이라도, 더 정확히 더 많이 알기를 원하며
아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말씀을 적용하며 살기를 원할 뿐입니다.
이런 생각으로 본문을 묵상하며
문자적으로 성경을 해석할 때 생기는 의문 하나를 제기해봅니다.
빌라도가 대제사장들과 무리에게 이르되 내가 보니 이 사람에게 죄가 없도다 하니(23:4 )
너희가 고발하는 일에 대하여 이 사람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고(23:14)
빌라도는 예수를 놓고자 하여 다시 그들에게 말하되(23:20)
이 사람이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나는 그에게서 죽일 죄를 찾지 못하였나니(23:22)
이에 빌라도가 그들이 구하는 대로 하기를 언도하고(23:24)
이 말씀으로만 생각하면
사도신경의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이 구절은
문제가 있는 표현이라 생각합니다.
마치 예수님이 빌라도 한 사람에게 고난 당한 것 처럼 비쳐져
대속의 거룩한 의미가 훼손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고난으로 몰아넣은 주체는
유대인 제사장들과 서기관, 그리고 바리새인들과 그 추종 세력이고
빌라도는 판결을 내린 사람이라는 사실의 바탕 위에서
이단의 논리에 대응하는 게 더 현명한 전략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물론 신천지 같은 이단들이 이 구절을 문제 삼아
사도신경이, 사단의 책략과 사주로 만들어진
일종의 세상적 교리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 기독교계가 전 세계 기독교계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상과
성도들의 열정에 걸맞는, 주옥 같은 신앙 고백문을
우리말로 새롭게 만드는 일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그게 안 되면, 새롭게 번역된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이라도
기독교계의 전체 합의로 채택해야 할 시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뿐입니다.
사도신경은 복음의 본질적인 진리이고
성경 전체 말씀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으며
교회가 사도신경의 신앙 고백 위에 세워졌음과
사도신경이 교회를 교묘하게 파괴시키려는
이단의 음모와 공작으로부터 성도들을 지켜주는
기독교의 표준적이고 보편적이고
무엇보다 공적인 신앙의 고백임을 인정한다는 전제 하에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한 번 더 검토해보고
관습적으로 암송해온 사도신경의 의미와 참 뜻을
새롭게 정립하고 깨달으려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고난 주간을 맞아
예수님의 고난을 깊이 묵상하며
나대신 지고 가신 그 십자가의 수치와 고통을
몇 끼의 금식으로라도 체휼하는 한 주를 보내기 원합니다.
오직 내 십자가 지고
예수님 가신 그 길을 걸을 때 내 죄만 보며
정의를 행하고 인자를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대로
행함을 실천하는 구원의 삶을 살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