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를 내 할 일 열심히 하고 성실하게 살자’
이것이 내가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달랐습니다.
남을 비방하고 헐뜯어 내 밑으로 깔아야 되는 것이고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고자 아첨을 해야
잘난 사람으로 인정받는 것이었습니다.
직장 내에서 요직이었던 광고 부서를 맡고 있었던
나를 질시하고 험담해대는 사람들이 명퇴의 원인이었습니다.
어느 날 명퇴의 길에 서게 되면서
무엇을 해야 하는 급한 마음으로
시작한 동업은 실패를 가져왔고 그 결과로
주변에서 나를 험담하며 퇴직의 길에 서게 한
직장의 몇몇 사람을 원수로 만들게 했습니다.
몇 년 뒤에 만난 퇴직 당시의 CEO에게
자신이 생각을 잘못했다며 미안하게 되었다는 사과를 들었지만
이미 지나버린 일에 대한 말은 공허하게 들려왔을 뿐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 마태복음 5장44,46,48절
구약의 율법에는 ‘눈에 눈 이에는 이’라는 원칙으로
공정한 재판을 하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 보복의 원리를 초월하여
오직 선으로 대할 것을 교훈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나에게 칼을 들이대려는 것과 같은 사람들에게
어찌 사랑의 마음만을 가질 수 있을까요?
사업실패하고 IMF의 혹독한 어려운 시절을 지나며
나를 궁지에 몰아놓게 했던 이들을
미워하고 저주하던 마음이 양육을 받으며
용서의 적용을 하면서 많이 퇴색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미워지는 사람이 한사람 있습니다.
직장의 같은 직급의 동료인데
이 사람은 자신의 팀에만 신경 쓰면 될 텐데
우리 팀의 일까지 간섭을 합니다.
그리고 우리 팀의 잘못된 점을
상사에게 보고하여 입장을 곤란하게 만듭니다.
아침 미팅이 끝나면 꼭 남아서 상사와 별도의 얘기를 하는데
그 때 험담을 하는 것 같습니다.
한번은 상사가 불러서 잘 좀 하라며
그가 하는 내 험담이 듣기 싫다는 말로 언질을 주었습니다.
그러니 괘씸한 생각이 들면서
자기는 완벽한 줄 아는 모양이지…….
하며 그가 실수하는 일들을 떠올립니다.
매일 그 동료와 그 팀이 하는 잘못된 일들을 관찰하여
리스트를 만들어 상사에게 보고할까 하는 앙심이 생깁니다.
“되로 받은 거 말로 줄까보다”
받은 것 보다 더 큰 것으로 그에게 치명타를 날리고 싶어집니다.
오늘 주님은 온전함을 요구하십니다.
이러한 마음을 버리라고 하십니다.
상대를 대적하지 말고 사랑하라 하십니다.
이런 일들을 내가 할 수 있을까요?
아버지의 온전하심을 내가 닮을 수가 있을까요?
오늘 내가 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을 말씀하십니다.
내 성품으로 내 의지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들입니다.
주님, 죄인 된 제게 사랑하고 기도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시고
오늘 조금이라도 온전해지는 삶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검단산에서 바라 본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