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본문은 마태복음 5장 21-32절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노의 행위와 분노의 말은 살인하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는 형제들과 즉시 화해하고 당신을 고발한 자들에게 사과하라고 가르치십니다.
또한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것은 간음하는 것과 같다고 하십니다.
만약 우리의 눈과 손이 죄를 짓는다면, 그것을 가지고 지옥에 가기보다 차라리 잘라버리라고 하십니다.
아내와 이혼하는 것은 그 여자와 또한 그 여자의 새 남편 모두를 간음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과 같다고‘
하십니다.
오늘 예수님이 하신 말씀의 요점은 ‘절제’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분노와 음욕과 복수심과 옳고 그름과 정욕 이 모든 것이 결국은 내가 선택한 것이었음을 깨닫는데
제 인생 전체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모든 ‘절제’도 역시 선택의 문제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저에게 말씀하시듯이 저는 ‘절제력’의 훈련을 하지 않아서 지옥에 갈 위기에
처한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세 번 간음의 죄를 지었습니다.
그것은 매 번 성적 욕망과 함께 행복해 지려는 욕망이 뒤엉켜 일어났습니다.
또한 그것은 매번 저와 주변 사람들에게 큰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만일 제가 ‘절제’에 대한 훈련이 되어있었다면 그렇게 많은 가슴 아픈 일들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절제력’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보다 긴 시간을 요하지만 더 큰 이득을 위해서 즉각적인 만족을 억제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한 번 더 생각하고 행동과 말을 늦추는 것입니다. 저는 그런 편이 못됩니다.
하지만 저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으로 남편으로 아버지로 목자로 교장으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 순간의 제 역할은 영적인 ‘절제’을 잘 발휘하는 것입니다.
제 인생이 저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절제’에 대한 훈련이 꼭 필요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것이고 저는 하나님의 목적에 따라 제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제가 하나님의 일꾼이라는 사실을 기억할 수 있다면 그러면 제가 행동하는 것, 말하는 것, 바라는
것에 대해 절제력을 기르는 훈련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저는 그 사실을 망각합니다.
한 작은 예로
하나님께서 내 몸을 잘 돌보라고 주셨는데 그것은 탐욕스럽지 않게 적절히 먹으며 넘치지 않게
적당히 운동하며 주어진 환경의 틀 안에서 적절한 수면을 취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저의 육체를 그의 목적을 위해서 필요로 하십니다.
저는 심한 허리 통증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저를 시각장애인 척추지압에게로 인도하셔서 척추와
골반의 문제를 기적적으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그 지압사는 저에게 향후 몇 달 동안 걷기 이외의 운동은 하지 말 것이며 앉을 때 책상다리를 하고
앉지 말 것과 같은 단순한 처방을 해 주었습니다.
근 20년 만에 허리에 통증이 없으니 날아갈 듯이 기뻤고 그의 처방대로 따랐습니다.
그러다 어제 그 처방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길을 걷다가 평행봉을 하려고 멈추어 섰습니다.
비록 제가 63세이지만 23세라고 착각을 하는 때가 있는데 당연히 평행봉 운동을 하다가
허리에 통증을 느꼈습니다. 자제력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허리가 아프지 않았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아서 기쁨의 소리를 질렀지만 좀 더 긴 안목
으로 생각하지를 못했습니다.
건강한 육체를 통해서 하나님이 주신 사명대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 잠시 방향과 목표를
잃어버렸습니다.
적용은 내 마음 속에 이기적이고 절제를 모르는 젊은 욕망의 자아를 억제하고 내가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섬기는 삶을 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