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본문은 마태복음 5장 13-20절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는 소금이요 빛이니 반드시 그 쓰임대로 제대로 쓰여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예수님은 이 땅에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온전히
이루려 오신 것임을 밝히십니다.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우리의 의가 바리새인의 그것을 넘어서야 합니다.
저는 제가 맡은 책임을 다하는 것에 거부감이 있습니다.
부모님 특히 어머니는 저를 편애하셨고 그러한 편애로 인해서 책임에 대한 거부감이 생겼습니다.
저는 어머니의 작은 우상이 되었고 어머니의 눈에는 제가 항상 다른 아이들보다 우월하게
비춰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남들보다 우월한 것도 내키지 않았고 최고가 되는 것도 원치 않았습니다.
압박감은 너무 컸고 저는 그저 중간이기를 원했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수영에서 두각을 나타내기는 했지만 여전히 주목을 받는 자리에 있는 것이
부담스러웠습니다. 저는 그저 수영과 놀이를 즐기고 싶었을 뿐입니다.
나이가 들면서 저는 의도적으로 일의 결과를 망치곤 했는데 어머니의 시선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별 효과는 없었습니다.
만족스럽지 못한 나의 결과를 애써 무시하고 계속해서 최고가 될 것을 강요했습니다.
더 나이가 들면서 저는 이제 책임을 회피하기 시작했습니다.
팀의 주장 또는 학급의 반장이 되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모든 책임에 있어서 저는 어머니의
그림자가 보였습니다. 책임을 회피하고 의도적으로 일의 결과를 망치는 것이 습관처럼 되었고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행동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잠재 가능성을 충분히 가진 사람이 왜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하고 실패하는지
의아해 합니다. 저의 박사학위 논문이 그에 대한 하나의 좋은 예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기대와 수준이 높은 등급의 프로그램을 가지고도 저는 형편없는 논문을 썼고
학위심사에서 탈락했습니다.
그런 식으로 어머니가 저에 대해 자랑을 늘어놓지 못하게 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나의 태도와 행동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
저는 제 행동에 책임을 져야만 하는 것을 알게 되었고 살아오면서 힘들었던 일들이 제가
스스로 한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CS 루이스가 말했던 것처럼 ‘고난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주의를 끌기 위해서 사용하시는
확성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현재는 남편으로써의 나의 책임을 다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전에는 책임을 외면하고 나 스스로 만족하는 남편의 역할을 나름대로 만들어 보려고도 했습니다.
결혼생활에서 힘든 일은 모두 아내에게 맡기고 저는 자유롭게 행동하고는 했습니다.
첫 결혼생활에서도 그랬고 현재의 결혼생활에서도 역시 그랬습니다.
처남의 경우가 좋은 예입니다.
저는 그가 우리와 함께 사는 것에는 동의했지만 그를 돌보고 가르치는 일은 모두 아내에게
떠맡겼습니다. 그녀는 처남의 이기적인 태도와 부주의하고 생각 없이 행동하는 것에 매우
힘들어했는데 사실 그는 저와 매우 비슷했습니다.
시간이 지나서야 결국 처남에 관한 일에 제가 개입해야함을 알게 되었고
때로는 꾸짖기도 하고 달래기도 했습니다. 아내가 통역을 해 주어서 어제 처남과 첫 번째
대화를 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진경이라는 한 여자의 남편입니다. 이것은 제가 그녀와 그녀의 삶에 대해 의무와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 의무와 책임에는 그녀가 그녀의 가족을 구원으로 이끄는 것을 돕는
역할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아내가 처남을 야단칠 때 피하거나 숨으려고 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돕도록 할 것입니다.
어머니는 제가 특별한 삶을 살 것이라고 가르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특별한 인생은 없습니다.
그저 제가 지금 있는 곳에서 평범하게 사는 것이 있을 뿐입니다.
나의 즐거움을 위해서 맡은 역할을 스스로 폐하지 말고, 오히려 지금 맡은 역할에 충실 하라는
것이 예수님께서 지금 저에게 원하시는 것입니다.